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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이탈리아 학자 움베르토 에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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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이탈리아 학자 움베르토 에코 별세

입력
2016.02.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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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이며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19일 암으로 별세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84세.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에코는 토리노대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으며 5년 정도 국영방송인 이탈리아방송협회(RAI)에서 다큐멘터리 PD로 근무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토리노대와 밀라노대, 피렌체대, 볼로냐대 등에서 미학과 건축학, 기호학 등을 가르쳤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개인용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은 그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에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1980년에 펴낸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계기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중세 수도원을 무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추리기법으로 다룬 이 소설은 에코의 방대한 지식이 담긴 현학적인 내용과 미스터리적인 전개방식 등의 매력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86년 국내에도 소개돼 ‘에코 열풍’을 불렀고, 1989년에는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1988년 두 번째로 내놓은 소설 ‘푸코의 진자’도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소설은 영세출판사 편집자 3명이 장난 삼아 템플기사단이 세계를 전복하려 한다는 음모설을 퍼뜨리려다 이 계획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이어 ‘전날의 섬’(1994년)에서는 17세기를 무대로 해상에 정박한 무인선에 닿은 한 청년이 멀리 날짜변경선 너머라고 믿는 섬을 보며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내용을, ‘바우돌리노’(2000년)에서는 제4차 십자군 원정 중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 중에 벌어지는 허풍선이 기사의 모험을 다뤘다.

2004년에는 다섯 번째 소설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고서적 전문가 얌보가 공적인 기억은 온전한데 개인적인 삶과 관련된 기억은 모두 사라진 특이한 기억 상실증에 걸려 경험하는 시간 여행을 담았다. 2010년에 낸 마지막 작품 ‘프라하의 묘지’에서는 거짓과 음모의 중심에 있는 시모니니라는 인물을 통해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생산되고 퍼져 나가는지 보여준다.

소설이 다작은 아니지만 에코의 작품에는 일관된 창작 방식이 있다. 문학과 역사, 다양한 언어적인 맥락을 연계시키는 ‘간(間)텍스트성’이다. 에코는 1990년대 중반 한 인터뷰에서 “내 소설은 이상한 우연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들을 아카데믹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애소설 같이 쉬운 소설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현대작가로 제임스 조이스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꼽은 적도 있다.

소설 이외에도 ‘중세의 예술과 미학’ ‘기호학 이론’ ‘독자의 역할’ ‘기호학과 언어철학’ ‘해석의 한계’ 등 학술서와 에세이도 다수 남겼다. 에코의 소설과 여러 인문학 책들은 모두 열린책들에서 국내 번역 출간돼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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