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필요한 사회가 더 좋은 사회는 아니다. 하지만 어른이 필요한데 없는 사회는 문제다. 현재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권력자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응답자 A씨)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한탄이 들려온 지 오래다. 제법 존경 받던 사회 명사의 부고에는 으레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최근 몇 년 새 그 물결은 열기의 과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사회의 큰 어른이란 한낱 미디어 우상화의 소산일 뿐이며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제적인 발상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응답자 B씨의 표현처럼 “부동산 투기 안 한 인물이 한 명도 없어서 장관 후보자 하나 지명하지 못하는 사회”가 어른이 없어도 좋은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의 모습일 수는 없다. 각자가 사회의 작은 단위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과 공공장의 영역에서 롤 모델이 돼줄 큰 어른을 갈구하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재작년 방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려보자. “고통 앞에 중립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던 교황을 전근대적 가부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늙는다는 것은 그저 추해지는 과정이 아니며, 누군가는 품격과 지혜와 연륜으로 나이듦이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임을 ‘지역구’를 넘어 ‘전국구’ 단위에서도 입증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꼰대만 넘쳐나고 어른은 없다는 젊은이들의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 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어른의 필요성을 역설한 응답자가 더 많았다. “초고령사회, 다문화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어른의 존재와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어른이 나서서 세대 간 갈등, 문화간 충돌을 조정해야 한다” “진정으로 어른이 필요한 시대다. 특히 청년문제와 교육문제에서 어른이 필요하다” 등이 대표적인 의견들이다. 지식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어른의 부재는 참으로 뼈아프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 가치의 향배에 점차 관심을 상실해간다는 이야기이고, 또 한편으로는 지성계가 그만큼 심각하게 게을러지고 있다는 점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공공지식인이 죽은 시대다. 지식인들의 감연한 자기갱신과 공적 분발이 요청된다.”
수평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른 없는 사회여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 C씨는 “꼭 어른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며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중민주주의, 다원주의 사회로 이행 중이고, 보편적 존경을 받으며 여론을 주도하는 소수의 어른보다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고 타협하는 시스템과 문화의 성숙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어른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는 실태와 ‘어른 없이도 괜찮은 사회’라는 지향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응답자 D씨는 그 간극을 메우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른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의식을 가진 나이 든 개인 주변으로 여러 생각들과 고민들이 모여들어 그 개인의 사유를 다양하게 음미하고 실행하는 관계적 과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어른은 생겨날 수 없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다소간 신화화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러나 분명 사회적 소통과 행위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개인을 생산하는 상징적 활동이 의식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그런 노력 없이 위대한 개인의 출현으로 시대의 어른이 등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정치 영역뿐 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노인 혐오의 정서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역할 모델이 되는 곳곳의 작은 어른들을 찾아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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