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보험설계사 등 특고노동자
회사 눈치에 가입률 10% 못 미쳐
개정안 발의 됐지만 법사위서 낮잠
여당 "국가가 가입강제 안돼" 제동
야당도 통과 어려운 원안만 고수
노동계선 민간 보험사 입김說 돌아
퀵서비스 경력 15년차 이승민씨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2가 사거리에서 고객의 콜을 받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씨는 "빠른 배송을 위해 무리하다 보니 퀵 기사들은 사고를 달고 산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blanc@hankookilbo.com

퀵서비스 기사로 15년째 일하고 있는 이승민(48ㆍ가명)씨는 지난해 6월 사고만 떠올리면 지금도 오토바이 핸들을 잡는 게 무섭다. 당시 이씨는 고객 물건 배달을 위해 서울 가락동에서 성수동 방향으로 잠실 석촌호수 앞 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열린 차량 조수석 문을 피하지 못하고 주차된 승용차와 충돌했다.

왼쪽 팔ㆍ다리에 전치 3주 타박상을 입은 이씨는 보름간 입원했고 치료비 250만원도 전부 부담해야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였다. 현재 퀵서비스 기사는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한 6개 특수고용노동자(특고노동자) 직종 중 하나지만 기사 10명 중 9명은 미가입 상태다. 사업자 전속성(종속성)이 있으면 보험료의 절반만 부담하지만 이씨처럼 ‘비전속’인 경우 기사가 전액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한 업체에 전속된 기사여도 회사 눈치 보느라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라며 “1년 중 사고 1, 2건은 피하기 힘든데 결국 내 몸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푸념했다.

이처럼 안전 사각지대에서 무방비로 방치돼 있는 특고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할 수 있는 법안이 정치적 득실만 따진 여야의 무책임에 떠밀려 표류하고 있다.

2년째 표류하는 개정안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라는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국회는 2년째 오불관언(吾不關焉ㆍ상관하지 않음)이다.

18일 국회ㆍ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4년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에 올라온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지난해 4월에 법안심사소위 회의에 상정된 것을 끝으로 지금까지 회의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산재보험법 상 보험설계사와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등 6개 직종 특고노동자의 경우 산재보험 가입이 허용되지만 ‘적용제외’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특고노동자가 출산, 질병 등의 사유가 아니면 적용제외를 신청할 수 없도록 했다. 이달 2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법안 통과 필요성을 강조하자 이 법안의 전격 상정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16일 법안심사소위 회의에서도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특고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확대는 2013년 5월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사실상 정부안으로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현실화되는 듯했다. 제외 신청을 까다롭게 해 10%에도 못 미치는 가입률을 높이자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그러나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환노위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 뜻밖에 여당 의원에 의해서였다. 노동부 관료 출신인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2014년 2월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이미 특고노동자를 민간보험에 가입시켜 놓은 기업에겐 이중 부담”이라며 개정안에 반대한 데 이어 전체회의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며 어깃장을 놨다.

더 큰 벽은 법사위였다. 이번에는 법사위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가로막았다. 그는 2월 법사위 회의에서 “보험회사가 100% 돈을 내 단체보험에 가입시켜주고 있는 보험설계사들에게 국가가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건 옳지 않다”며 여야 합의로 환노위에서 올라온 법안 통과를 보류시키고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했다. 당시 국회 안팎에선 법안 통과를 막으려는 생명보험사들의 입김이 거셌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1년여 동안 법안이 묶이자 여당 내에선 적용제외를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을 추가해서라도 법안을 처리하자는 기류가 생겼고 지난해 6월쯤 여당 의원들이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고 산재보험에 준하는 민간보험 가입 시에는 적용제외를 신청할 수 있다”는 문구를 법안에 넣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 당초 사회보험의 근간을 흔들 수 없으니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던 고용부도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다. 원안에 반대했던 권성동 의원이 환노위 새 여당간사가 되면서 미온적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국회 안팎의 전언이다.

야당 역시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은 수정안을 통과시키고 싶으면 야당 환노위원들을 설득하라고 고용부에 주문했지만 야당 위원들은 원안을 고수했다. 그러다 노동개혁 입법이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고용부가 이 법안에 매달릴 이유가 사라졌을 거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18대 국회 때도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발의(2011년 10월)로 추진됐다가 상임위도 넘지 못하고 무산됐던 특고노동자 산재보험 의무화 입법은 19대에서 상임위 문턱까진 넘었지만 결국 다시 20대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보험사업주 단체에 휘둘린 일부 의원 반대와 국회의 특고노동자 외면 탓에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오랫동안 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보험 가입 도미노를 막아라

현행법상 산재보험 당연 가입 원칙이 적용되는 6개 특수고용직 중 보험설계사가 33만여명으로 단일업종으로는 가장 많지만 산재보험 가입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소속회사 민간보험에 단체로 들고 있어서다. 법안과 보험업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이유다. 고성진 사무금융연맹 사무서비스노조 보험모집인지부 지부장은 “자사 보험보상이 산재보험보다 더 낫다는 사용자 측 홍보가 주효하기도 했지만 절대 다수가 산재보험에 가입을 안 하는 분위기다 보니 신입 때부터 적용 제외를 신청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업이 정작 우려하는 건 근로자성 인정에 따른 사회보험가입 ‘도미노’ 현상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로 보게 되면 당연히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해지고, 지금은 산재보험에 그치지만 고용보험ㆍ국민연금 등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나 사용자가 특수고용 판단 기준을 가급적 좁게 보려 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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