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빈 아파트를 골라 가스배관을 타고 22층까지 올라가 금품을 훔친 40대 스파이더맨이 결국 덜미를 잡혔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두 달 만에 범행을 저지른 이 절도범은 불과 5시간여 동안 9,000만원이 넘는 금품을 쓸어갔다.
세종경찰서는 아파트에서 수 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특수절도 등)로 김모(43)씨를 구속했다.
김 씨는 지난 7일 세종시 신도심 모 아파트에서 18차례에 걸쳐 9,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이날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자정 35분까지 5시간 30여분 동안 같은 단지 내 5개 동의 아파트에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
김 씨의 범행은 치밀했다. 3층까지는 베란다를 이용해 올라갔다. 절도 예방 등을 위해 아파트 가스배관은 3층까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3층 이후부터는 가스배관을 타고 순차적으로 올라가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대범함도 보였다.
범행 대상도 다른 동 아파트에서 보이는 곳은 피했다. 대신 베란다가 산을 바라보고 있어 다른 동에서 자신이 침입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곳만 골라 금품을 훔쳤다.
준비도 철저했다. 범행 전 중국인 명의로 음성통화와 문자만 할 수 있는 대포폰을 개설했다. 이 대포폰은 대포차를 사기 위한 것이었다. 김 씨는 단 두 번만 통화한 뒤 대포폰을 버렸다. 아파트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가장 높은 층에서 내려올 때는 훔친 옷으로 갈아 입고, 입었던 옷을 태우기도 했다. 대포차는 전남 순천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김 씨는 이렇게 훔친 귀금속 등을 범행 직후 서울 등지에서 장물로 처리했다. 돈이 생기자 골프와 스킨스쿠버 등을 즐겼다. 지인들에게는 자신을 골프 강사라고 소개했다.
경찰은 김 씨가 같은 수법으로 충북 지역 모 아파트에서 지난 6일 6,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사실도 밝혀냈다. 김 씨가 전주 덕진, 완주, 순천 등지에서도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여죄도 수사 중이다.
세종서 이권수 강력팀장은 “김 씨는 신창원처럼 덩치가 크진 않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스타일로, 좋은 체력을 바탕으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이제 신축 또는 고층아파트라고 절도 피해에 안심할 수 없게 됐다”며 “침입자 감지 방범센서 설치 등 적극적인 예방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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