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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따거' 성룡의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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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따거' 성룡의 뒷얘기

입력
2016.02.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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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룽(성룡)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도장을 남긴 유일한 중국 배우로 알려져 있다. 쌤앤파커스 제공
청룽(성룡)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도장을 남긴 유일한 중국 배우로 알려져 있다. 쌤앤파커스 제공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청룽ㆍ주모 지음ㆍ허유영 옮김

쌤앤파커스 발행ㆍ664쪽ㆍ2만2,000원

홍콩 출신의 유명 영화배우 청룽(성룡ㆍ62)은 1986년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영화 ‘용형호제’를 촬영하다 사고를 당했다.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다가 나뭇가지가 갑자기 부러지면서 추락했고, 머리를 돌에 부딪혔다. 뇌수술 최고 권위자인 스위스 의사가 근처에 있어 겨우 살아났다.

성룡의 사고와 기적적인 생존을 서술한 이 책의 대목을 영화광(특히 홍콩영화 팬)이 읽는다면 다른 이유로 눈이 동그래질 것이다. 당시 촬영장 조감독은 이후 홍콩의 대표 예술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관진펑(관금붕)이었다. 촬영감독은 류웨이장(유위강)으로 훗날 ‘무간도’시리즈를 연출한다. 제작은 ‘첨밀밀’(1996) 감독으로 유명해지는 첸커신(진가신)이었다. 촬영현장 초반 작업 감독은 나중에 배우로 이름을 날리는 쩡즈웨이(증지위)였다.

성룡이 수술 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유명 배우 알란 탐이 조용필의 노래 ‘친구여’를 휘파람으로 들려줬다. 성룡이 죽을 뻔했던 사고에 얽힌 인물의 면면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는 커질 만하다. 책은 그 기대에 상당부분 부응한다. 성룡이 홍콩ㆍ할리우드 별들과 맺은 숱한 인연, 영화 촬영 뒷얘기, 성룡의 사생활 등이 담담한 어투로 담겨있다.

동문수학한 홍진바오(홍금보)와 청룽(성룡), 위안바오(원표)는 성인이 된 뒤 홍콩영화계를 주름잡게 된다. 쌤앤파커스 제공
동문수학한 홍진바오(홍금보)와 청룽(성룡), 위안바오(원표)는 성인이 된 뒤 홍콩영화계를 주름잡게 된다. 쌤앤파커스 제공

홍콩에서 1954년 태어난 성룡은 부촌 빅토리아피크에서 자랐다. 집은 프랑스영사관에 있었는데 생활은 빈한했다. 10㎡ 남짓한 공간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 성룡의 아버지는 영사관 주방장이었고, 어머니는 가정부였다. 12개월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5.5㎏의 과도한 우량아로 태어난 성룡은 타고난 싸움꾼이자 말썽꾸러기였다. 부모의 인맥 덕분에 명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 때 낙제한 뒤 바로 자퇴했다. 성룡 아버지는 7세 아들을 중국희극학원에 보냈다. 홍콩영화의 ‘따거’(큰형님을 뜻하는 중국어) 성룡은 이때 출발점에 섰다. 중국희극학원에서 그는 평생의 동지인 홍진바오(홍금보)와 위안바오(원표)를 만났다. 성룡은 10년 동안 공연용 무술 수련을 쌓은 뒤 홍진바오의 끈을 잡고 영화계로 나갔다.

무술배우(라고 표현했으나 엑스트라)로 이력을 시작할 때 그가 하루에 받은 돈은 5홍콩달러였다. 죽는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조금씩 영역을 넓혔다. 오래 꿈꿨던 무술감독이 됐고 곧 주연배우로 격상됐다. ‘치열이 고르지 못하고, 눈이 너무 작다’며 성형수술을 권유 받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8편 연속으로 주연을 맡았다. 리샤오룽(이소룡)의 맹활약으로 전성기를 누린, 당시 홍콩 무술영화는 그의 요절로 몰락 분위기였다. 성룡의 출연작들은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고, 성룡의 이름 앞에 ‘흥행 부도수표’가 붙었다. 그는 부모가 이민 간 호주의 공사장과 식당에서 일하다 홍콩으로 돌아와 ‘취권’(1978)으로 커다란 별이 됐다. 이후 그의 화려한 영화 인생은 많은 사람들이 알만하다.

청룽(성룡)은 리샤오룽(이소룡)이 주연한 '용쟁호투'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쌤앤파커스 제공
청룽(성룡)은 리샤오룽(이소룡)이 주연한 '용쟁호투'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쌤앤파커스 제공
청룽(성룡)은 장궈롱(장국영)이 죽기 전까지 친구로 지냈다. 청룽은 장궈롱이 종종 일부러 귓속에 바람을 불어넣어 골리곤 했다고 회상한다. 쌤앤파커스 제공
청룽(성룡)은 장궈롱(장국영)이 죽기 전까지 친구로 지냈다. 청룽은 장궈롱이 종종 일부러 귓속에 바람을 불어넣어 골리곤 했다고 회상한다. 쌤앤파커스 제공

책에는 성룡의 솔직한 고백이 많다. 24세에 1,000만홍콩달러를 갖게 된 성룡은 졸부 근성을 맘껏 발휘했다.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고, ‘아침에는 포르쉐를 들이받고 저녁에는 벤츠를 부수’는 제멋대로 생활을 했다. 성룡은 ‘지위나 재산을 보고 알랑거리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하고 싶었고, 그러면서 쾌감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대만 유명 가수 덩리쥔(등려군)과의 아련한 사랑이야기, 지하 술집에서 함께 식사하다 우울하고 갑갑하다고 먼저 가버린 장궈롱(장국영)과의 마지막 만남, 메이옌팡(매염방)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 혼외자식을 낳은 뒤 아내와의 갈등, 마약 복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아들 팡쭈밍(방조명)때문에 겪은 속앓이 등도 읽을 수 있다.

책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친중국 인사로 홍콩인의 미움을 사고 있는 성룡이 홍콩보다 중국본토에서 애국심을 더 강조하는 이유를 책을 통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무명시절 한국에서 오래 활동했고, 한국도 자주 방문했던 그는 국산품을 애용하는 한국인을 본받아야 된다는 짧은 서술로만 한국을 언급한다. 한때 ‘명절엔 성룡’이라며 그를 사랑했던 팬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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