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3일 오후7시13분 서울 잠원동의 한 호텔 정문 앞. 서모(38)씨는 입구에 자신의 에쿠스 차량을 세운 후 차 키를 주차대행(발레파킹) 기사 이모(58)씨에게 건넸다. “차를 잘 부탁합니다”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이씨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서씨가 어린 딸을 데리고 호텔 안으로 사라지자 금세 절도범으로 돌변했다. 그는 차 안을 뒤져 20만원 상당의 지갑과 체크카드를 훔친 뒤 유유히 사라졌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던 이씨는 결혼식과 모임이 많아 차량으로 붐비는 토요일 오후의 호텔을 노렸다. 당시 입구에는 차량 10여대가 몰려있었지만 진짜 주차대행 기사는 단 두 명뿐이었다. 지갑을 손에 넣은 이씨는 버스를 타고 반포동으로 이동, 한 금은방에서 훔친 카드로 20만원 상당의 금반지를 샀다.
이씨는 앞서 같은 달 7일 오후에도 대리운전을 하면서 술에 취해 잠든 손님 박모(60)씨의 지갑 안에 있던 현금 17만원과 체크카드를 슬쩍했다. 이튿날 훔친 카드로 42만원 상당의 금팔찌를 구매했다.
이씨의 범행은 피해자들에게 체크카드 결제 내역이 휴대폰 문자로 통보가 가면서 들통났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카드 사용 내역을 토대로 이씨를 추적해 지난 11일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6년 전 대리운전을 시작한 이씨는 2012년에도 술에 취한 손님의 물건을 훔쳐 구속됐다가 이듬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등 같은 범행으로 세 차례 처벌 받았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현금화가 쉬워 주로 금붙이를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씨를 절도 및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주차대행을 맡길 때는 정식 직원인지 꼭 확인하고 대리 운전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먼저 요금을 지불하고 지갑은 별도로 보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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