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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부려먹는 법... 출근 늦추고 꿀잠 자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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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부려먹는 법... 출근 늦추고 꿀잠 자게 하라

입력
2016.02.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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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야근, 회식. 우리는 정말 건강하게, 그리고 잘 일하고 있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이어지는 야근, 회식. 우리는 정말 건강하게, 그리고 잘 일하고 있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안녕히 주무셨어요?

페터 슈포르크 지음ㆍ유영미 옮김

황소자리 발행ㆍ280쪽ㆍ1만3,000원

“대다수 사람들에겐 지금의 업무 시간이 너무 이른데다, 낮에 햇빛까지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비로소 저녁쯤 되어야 능률의 정점을 찍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일반 시민의 무려 93%가 지금의 평균인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를 힘들어 한다.”

“여가시간과 업무시간을 명백히 구분하지 말고 적절히 혼합하여 일하면서 여러 번 길게 쉬어주는 것은 만성 스트레스를 예방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다.”

“일을 하면서 90분에 한번씩은 짧은 작전타임 시간을 가지는 것에 더해서 하루 서너 번 식사시간을 기준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

“BMW에서는 여가시간에 한 일을 데이터뱅크에 기입하면 온전한 업무시간으로 인정한다. 개인적 시간대를 정해 고지하면 그 시간에 이메일이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금전적 보너스를 통해 사람들을 교대 근무로 유인하는 것, 또는 이런 사람들에게 낮은 급여를 책정해 추가 수당 없이 받는 임금이 너무 적게 만드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종종 열악한 조건에서 그들을 24시간 내내 혹사시켰던 초기 산업시대의 방법이다.”

오호, 이런 복음이라니. 만국의 넥타이들이여 단결하라.

‘안녕히 주무셨어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잠을 잘 자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주장하면서 근로자와 사용자가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팁들을 제시하는 책이다. 잠과 술이 덜 깬 머리로 일찍 출근해봤자 일하는 시간만 질질 늘어날 뿐, 일 자체의 성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노동시간은 1, 2위를 다투지만 노동생산성 20위권 밖인 우리 처지엔 딱 알맞은 얘기다. 총선 시즌이라 그런지 우리 정치권에서도 ‘칼퇴근법’ 같은 얘기가 나온다. 더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대기업 사원 100여명에 대한 조사 결과,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하기야 이걸 꼭 조사해봐야 아나. 주변에서 하는 얘기는 늘 이렇다. 어젯밤 야근과 회식으로 묵직한 몸을 이끌고 1시간 넘게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며 출근하면, 오전 동안 몸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일이 안 되니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인터넷 서핑하고 시간을 보낸 뒤 해장 겸 점심을 먹으면 식곤증으로 머리와 몸이 노곤해진다. 서서히 깨어난 머리와 몸이 제 컨디션을 되찾아 마침내 일에 집중하지만, 곧 조금 지나면 저녁 때다. 오늘도 아이 얼굴 보긴 글렀다. 야근해야 한다. 야근하고 나니 고생했다며 소주 한 잔 하러 가잔다.

저자는 잠의 과학을 파고 든다. 여러 연구 결과를 둘러본 뒤 내린 결론은 이렇다. 출근시간은 늦출 수 있는 한 최대한 늦추고, 90분쯤 일하고 한 번 쉬어줘야 하며, 낮잠은 20분씩 자주는 게 좋다. 또 가능하다면 자신의 리듬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절해 쉬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알아서 나눠 쓸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이런 원칙은 아이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성적을 올리려면 아침에 일찍 등교시키는 게 아니라 늦잠을 자도록 장려해야 한다. 천하의 중ㆍ고딩들도 단결하라.

저자도 안다. ‘자율’ ‘창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시간을 질질 늘리기 위해 ‘업무시간 유연화’라는 말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을. 해서 업무시간의 유연화 대신 ‘업무시간의 개인화’라는 표현을 쓴다. 어감이 확 다르다. 개인에게 자신의 생체리듬에 맞게 일할 수 있는 맞춤형 노동시간을 제공한다면, 노동자의 건강도 좋아지고 회사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창의적 아이디어도 만개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사실 이건 몰랐던 게 아니다. 이미 1930년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손주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란 글에서 생산기술의 발달로 100년 뒤엔 2030년쯤이면 주 15시간 근무면 충분하다 예측했다. 주5일로 치면 하루 3시간 근무, 9시 출근한다면 12시 퇴근이다. 직장인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따윈 비교할 바가 아니다. ‘오후에다 저녁까지 있는 삶’이다. 점심 먹고 나면 뭘 할까. 영국 귀족답게 케인즈는 정원을 돌보고 산책을 하고 친구와 우애를 나누라 했다. 그러면 진리탐구와 예술이 꽃피리라 했다. 진리탐구와 예술이라니. 혹시 이거, 창조경제에 대한 힌트 아닐까.

이를 본받아 오전엔 스마트폰과 이메일로 급한 업무만 간단히 처리하고 점심 뒤 출근해서 오후에 집중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바꾸자고 한다면, 창조경제의 선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2030년이 14년 남은 지금, 확실히 생산기술은 발달했다. 다만, 이메일과 카카오톡과 휴대전화로 조금 더 촘촘하게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요즘엔 곧 로봇이 나오면 다 사표 써야 할지 모른다는 묵시론도 횡행한다. 그러고 보니 케인즈도 이미 그 때 케인즈다운 균형감각을 발휘해 “부지런한” 산업 부르주아들은 ‘주15시간 노동’ 같은 주장 따윈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 귀족의 헛소리로 취급해버리라고 너스레를 한참 떨었다.

그렇다고 헛소리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보리출판사 등 1일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회사가 있다. 스웨덴도 집중적으로 일하고 푹 쉬자는 취지에서 6시간 근무제가 확산되고 있다. 본격적인 로봇시대에 접어들면 기본소득 보장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논의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부지런한”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기술발달이 아니요, ‘노동하는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아닐까. 창조경제와 저성과자란 그 시선이 가른 동전의 양면 같은 거 아닐까. 늘 그렇듯,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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