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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과학책읽기]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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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과학책읽기]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입력
2016.02.1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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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스반테 파보 지음ㆍ김명남 옮김

부키 발행ㆍ440쪽ㆍ1만8,000원

작가이자, 예술가이며, 커리어 코치이기도 한 에밀 와프닉은 한 강연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어 도저히 한 분야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라 다능인(多能人)이라고 명명한다. 다능인의 특징은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아이디어 통합 능력, 둘째 빠른 습득력, 셋째 적응력이다. 에밀 와프닉의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저자는 한마디로 다능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다능인 과학자의 활약이 고인류학의 난제를 어떻게 돌파하고 고유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창출해냈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멋진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955년 스웨덴 태생으로 열세살 때 어머니를 따라 이집트에 다녀온 후 고대 이집트 역사에 매료된다. 그는 명문 웁살라대에 진학해 2년간 이집트학을 공부한다. 이집트학이 자신의 취향과 달리 너무 고루하고 역동성이 부족한 학문임을 깨달은 그는 기초과학에 뜻을 두었지만 의대로 옮겨 4년간의 의학 과정을 마친다. 잠시 의사가 될까 하고 고민도 했지만 그는 페터 페테르손 교수의 연구팀에 합류해 분자생물학 연구를 시작한다. 중요한 이식 항원의 DNA 서열을 최초로 복제한 연구팀에 들어가 주목 받을 만한 논문을 최고의 학술지에 여러 편 발표했지만 고대 이집트에 대한 낭만적 매혹을 온전히 털어낼 수 없었던 그는 지도교수 몰래 고대 이집트 미라를 틈틈이 연구해 미라의 DNA를 추출하고 염기 서열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1985년 ‘네이처’에 발표하기에 이른다.

논문 발표를 계기로 그는 스웨덴을 떠나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앨런 윌슨이 있던 미국 UC버클리에서 포스닥 과정을 밟으면서 중합효소연쇄 반응(PCR)을 이용해 멸종동물의 DNA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멸종생물 DNA 염기서열 해독의 독보적 연구자로서 그는 DNA의 안정성과 분해에 관한 엄밀한 연구에도 크게 기여한다. 독일 뮌헨대를 거쳐 세계 최고의 연구소 중 하나인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에 초빙된 그는 이후 고생인류의 DNA 연구에 헌신한다. 그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 염기 서열을 완전히 해독하는데 성공하였고 2006년 네안데르탈인 핵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4년 만인 2010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의 연구로 인류학연구에서 ‘아프리카 기원설’이 확고한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이종교배가 있었다는 점, 네안데르탈인은 어느 지역이든 아프리카 외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전적 기여를 했다는 점을 최초로 밝혔다. 이게 끝이 아니다. 2010년에는 시베리아 남부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뼈의 게놈을 해독하여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고생인류임을 확인하여 고생인류 유전자학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책은 저자의 고대 유전자 연구의 개척자로서의 30년 인생을 담고 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영웅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과학자들 내의 협력과 갈등, 경쟁이 진솔하게 묘사되며, 자신의 개인사의 어두운 부분까지 생생하게 기록한다. 이 책은 인류사 연구에 과학이 얼마나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값지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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