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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빗방울이 듣다

입력
2016.02.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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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듣는 차창으로…”

언젠가 낡은 버스 차창 안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원고를 보낸 후 인쇄된 글을 보니 ‘듣는’이 ‘드는’으로 고쳐져 있었다.

‘듣다’는 비나 눈물 따위가 방울져 떨어지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이는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오타로 여겨질 만큼 생소한 말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적긴 하지만 ‘빗방울이 듣는 일요일 아침 옥상 텃밭에서’, ‘호수엔 빗방울 듣고’처럼 몇 용례가 보인다. 문학적 감성까지 어우러져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표현들이다.

“그릇을 부시고”

이 말을 적어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하나같이 그릇을 깨뜨렸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흔히 ‘부수다’를 ‘부시다’라고 하는 데 이끌린 탓이다. ‘부시다’는 그릇 따위를 물로 씻어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그 정갈한 느낌 때문인지 입안을 헹구는 경우에도 쓰였다.

이 역시 예전에는 적잖이 쓰이던 말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세력이 약해져 이제는 ‘부수다’의 비표준어 ‘부시다’로만 이해되는 데 이르고 말았다. 마치 단아한 아가씨가 우락부락한 장정이 되고 만 느낌이랄까. ‘부시다’에는 ‘씻다’에는 없는 고유한 뉘앙스가 있다. 햇살이 반짝이며 튕겨져 나가는 듯 맑고 시원한 느낌은 오직 ‘부시다’에만 있다.

그래서 낱말 하나하나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선진 국가에서는 그 나라의 국어 시간에 어휘 교육에 굉장히 힘을 쏟는다고 한다. 풍부한 어휘력은 사고력과 표현력을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휘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다면 우리말도 더 풍요로워지고 아이들도 더욱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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