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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동전 던지기

입력
2016.02.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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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 대선이 화제다. 이야깃거리가 되는 건 당연히 양극단의 두 인물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인데 나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규정력이 워낙 절대적이니까 충청도 시골의 농군에게도 영향을 줄 거라는 황당한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과연 미국이구나, 하고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맨 처음 민주당 예비선거가 치러진 아이오와에서 동률이 나온 지역들이 동전을 던져 승패를 가렸다는 작은 뉴스가 그것이었다. 비록 큰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고 흥분되는 뉴스였다.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오해된 믿음이 많고 많은데, 선거가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민주주의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렇고 날카롭게 사회를 바라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투표를 통한 선거는 상당히 위험한 제도였다. 피선거권자라는 배타적 지위는 금력과 권력이라는 사다리가 없으면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다. 투표를 하는 자들은 마치 엄청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저들이 만들어놓은 리그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들이다. 마치 가두리 양식장 속의 물고기들이 그 안을 바다로 착각하는 것처럼, 자기를 가둔 자들에게 합법성을 부여하는 한 표를 던지고는 마치 자유를 행사한 듯이 만족스럽게 돌아서는 게 선거라는 제도의 전부다. 민주주의에는 더 넓은 바다가 있다.

우리 마을은 이장을 일종의 동전던지기 방식으로 뽑는다. 꼭 한 번 두 사람이 경합을 한 적도 있지만 보통 귀찮은 그 자리를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돌아가면서 이장을 하게 된다. 일단 이장이 되면 마을 일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누가 하든지 별 허물을 남기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다. 이쯤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치라는 것을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삼지 않는 게 훨씬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동전을 던지든, 제비뽑기를 하든 자유의사를 가진 사회구성원 중에서 우연적 방식으로 정치 대표자를 뽑는다면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정치에 대한 환멸을 대부분 날려버릴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인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카르텔이 존재할 수 없고, 금권선거가 사라지며 유권자를 속이는 온갖 기만이 필요 없어진다. 무엇보다 국가권력이 자연스럽게 시민의 권력으로 이동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거제도는 구시대의 유물이자 폐기해야 할 어떤 것이다. 고대 도시의 아고라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던 진짜 민주주의를 짓밟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한 시기를 점령했던 괴이한 미신으로 기억될 게 틀림없다. 내가 뽑은 누군가가 나를 괴롭힌다는 역설을 받아들이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친박, 진박 논란이야말로 선거제도가 보여주는 극도의 단말마적 피폐함이다.

황당하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나야 당연히 선거보다 동전던지기가 민주적이라는 확신만 있을 뿐 더 상세한 보완책이 있을 리 없다. 그것을 마련하는 일이 바로 ‘정치엘리트’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다만 우리 마을에서 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열리는 마을회의와 임기 중간에 큰 허물이 있을 때면 동계에서 이장을 바꾸는, 사소한 아이디어 정도는 제공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무성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기존 선거제도는 더욱 타락하고 우매한 자들은 차선이니 차악이니 하는 맹랑한 말에 놀아난다. 인터넷이고 SNS고 모두 곱다시 저들이 쳐놓은 그물 속으로 들어가 부딪치며 헤엄치는 꼴이다. 동전 하나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바다로 갈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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