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눈매에 입 꼬리를 끌어올리는 미소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은찬(윤은혜)이 남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을 고백했던 순수남 한결(MBC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이 그랬고, 선생님(이민정)에 대한 사랑에 솔직했던 고등학생 경준(KBS ‘빅’)도 마찬가지였다.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던 것일까. 공유(36)가 정통 멜로를 표방한 영화 ‘남과 여’(25일 개봉)로 성숙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웃는 얼굴로 밝은 이미지를 발산하던 기운은 싹 지웠다. 핀란드의 새 하얀 설원 위에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남자 기홍을 그저 뜨겁게 연기했다. ‘남과 여’는 그의 첫 멜로영화다.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공유는 “정통멜로를 꼭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판타지가 가미된 비현실적인 사랑을 그린 로맨틱코미디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에 가로막힌 가슴 아픈 “어른들의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 로맨틱코미디처럼 판타지가 가미된 연기는 제가 오글거려서 못하겠더군요. 정형화된 로맨틱코미디의 틀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여전히 드라마에서 종종 보여지는 남녀의 4각 관계는 이제는 바라보기 힘들어요.”
어른 멜로인 ‘남과 여’는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나 깊은 관계를 맺게 된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의 사랑이야기다. 각자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로 살아온 두 사람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인데 두 사람은 거부하지 못한다.
궁금했다. 현실에서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사랑을 공유도 시도할 수 있을까. 공유는 “우발적으로 몸을 던지는… 그런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성인 남녀가 사랑을 하는데 어떤 조건이나 스킨십의 순서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사랑이라는 게 즉흥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용기도 내봐야 진짜 사랑을 알아가는 것도 같고요. 제가 수동적인 편이라 그럴까요(웃음)? 실은 저보다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여성을 만났을 때 더 편안한 느낌을 받거든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기홍을 위해 공유는 15년 연기생활 동안 처음으로 노출연기를 감행하는 용기를 냈다. 전도연과 격정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보여준 공유의 수위 높은 베드신에 많은 팬들이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공유는 ‘남과 여’의 남자주인공으로 낙점된 이후 주위에서 “왜 하느냐” “벗는 게 싫지 않느냐” “진짜 하는 것이냐” 등 그의 시도를 무모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했다. 공유는 오히려 “베드신 연기에는 부담이 없었다”며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작품 속에서 남자로서 풍길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20대에 비하면 표정이나 몸짓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19금’ 영화라면 더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부터 노출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무리 15년을 연기한 배우라 해도 첫 도전하는 연기였으니 능숙하게 해낼 수 없었다. 그는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베드신의 수위가 높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극적이지 않고 품격 있게 그려져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옆에서 바라 본 전신 노출 장면이 편집된 점을 꼽으며 “근육을 줄이면서 고된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고 말하며 웃었다.
공유가 부담이 될 수 있는 노출 연기를 감수하면서까지 ‘19금’ 멜로영화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전도연이었다. 그는 “이윤기 감독께는 죄송하지만 전도연 선배가 함께여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공유는 소속사 싸이더스HQ, 매니지먼트 숲 등을 거치며 수 년간 전도연과 한솥밥을 먹었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소속사 선후배 사였으나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 상대배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공유는 이번에 전도연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제 나름대로 섬세한 연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 선배의 연기를 보고 많은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전도연의 연기에 자극을 받으며 더 깊이 있게 감정을 뿜어내고자 했다고. “전도연 선배와 연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있겠어요? 앞으로도 많지 않다고 봐요. 저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남과 여’를 잡은 것이죠.”
공유는 ‘남과 여’를 통해 멜로 연기에 대한 깊이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나이 40대를 기대하다고도 했다. “남자로서 진짜 남자가 되는 순간은 40대가 아닌가 싶어요. 수컷 냄새가 나고 농익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40대 같아요. 40대가 되면 ‘남과 여’와 비슷한 장르를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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