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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고공농성 기록 갈아치우는 사회 모순 영원히 감춰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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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고공농성 기록 갈아치우는 사회 모순 영원히 감춰질 순 없다”

입력
2016.02.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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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펴낸 송경동 시인. 창비 제공
세 번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펴낸 송경동 시인. 창비 제공

“경북 구미공단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라간 지 이백일 넘은/ 차광호가 보내온 사진 한장/ 형형색색 층층이 쌓인 사각형들/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현란한 색채/ 그 위에서 그림을 그렸느냐고, 무척 아름답다 했더니/ 굴뚝 침탈 시 무기로 쓰려고/ 소변 담은 사각 페트병을/ 차곡차곡 쌓아둔 거란다/ 그날 먹은 것에 따라 꽁꽁 언 페트병 무늬가 달라져/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고”(‘뻰찌 예찬’ 중)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의 해고 노동자 차광호씨가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8일까지 공장 굴뚝에서 버틴 408일은 한국 노동 역사상 최장기 고공농성으로 기록됐다. 차씨가 비인간적인 시간을 견디는 동안 굴뚝 아래에는 함께 해고된 동료들과 다른 회사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그리고 송경동 시인이 있었다.

송경동 시인이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는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이 굴뚝에 오르고 세월호 유족들이 길바닥에 주저앉고 강정마을 주민들이 눈물을 뿌릴 때 그 자리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거기서 쓴 형형색색의 시는, 꽁꽁 언 오줌으로 만든 해바라기처럼 권력과 자본의 민낯에 오물을 뒤집어 씌운다. 7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시인의 투쟁기록이자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의 한 단락이다.

“우리 사회가 고공농성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어요. 차광호씨가 있던 굴뚝은 새들도 둥지를 안 트는 곳이었습니다. 그 사람, 거기서 숨소리가 그리워서 완두콩을 심었어요. 인간인 거예요. 우리가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자본 중심 사회에서 자꾸만 잊혀지고 있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17일 한국일보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전세계적인 노동 착취 현장에서 한국 기업이 주체적 위치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구로공단에서 국가가 폭력으로 노동자를 진압했던 일이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 의해서요. 이 기업들은 국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뒤 제3국으로 진출하는 거라 국내 노동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런 부분에는 눈을 감아버려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제목은 그런 이중성, 좁은 마음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표제시에서 그는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시위에서 총상을 입은 외국 노동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국적과 이름을 버린다. “나는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중)

‘헬조선’이 표상하는 근래의 절망적 분위기에 비하면 시인의 분노는 기이할 정도로 시퍼렇다. 20년 넘게 투쟁 현장을 지키며 번번이 자본의 승리를 목도한 사람의 결론이 희망이란 사실은, 권력뿐 아니라 일찌감치 누워버린 민초들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왜 지칠 때가 없겠어요. 이 사회가 정말 바뀔까, 수없이 의심합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해요. ‘나는 소수가 아니다’. 비정규직이 이 땅에만 천만이에요. 나 같은 사람이 수적으로 다수란 겁니다.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 같은 사회적 민주주의자가 나오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모순은 영원히 감춰질 수 없어요. 인간들의 꿈과 열망이 이 사회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겁니다.”

시인은 지난해 말 노동법 개악을 반대하는 ‘을들의 국민투표’가 일단락된 뒤 한숨 돌리기도 전에 ‘비정규 노동자의 집’ 건립을 시작했다. “지방 기업에서 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서울로 올라와 노숙 농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화면세점 앞, 구 인권위원회 건물 옥상에서 지금도 추위에 떨고 있어요. 그 분들이 가끔 들러 따뜻한 밥 먹고 빨래라도 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의 투쟁의 끝은 어디일까. 그는 문학상 상금이 불법 시위 혐의로 선고 받은 벌금보다 조금 더 많다며 여유를 부린다. “부디 내가 더 많은 소환장과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의 주인이 되기를/ 어떠한 시보다/ 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시인과 죄수’ 중)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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