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해법에 중국 동의 안해
강경 압박 계속 땐 북한 편 들 것
한반도 평화 안정 논리 내세워야
北제재에 중, 러 끌어들일 수 있어
제제 압박은 협상 유도의 한 단계
남북 채널 재가동해 긴장 해소해야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연결 등
돌파구 마련 전략적 복안 필요
박근혜 대통령은 대화나 협상 없이 오로지 압박과 제재만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신 대북 독트린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봉쇄 독트린만으론 북한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고 17일 말했다. 대화 없는 제재는 중국의 입지를 좁혀 미중 갈등과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고, 북핵 대화국면에서 우리 정부만 자칫 ‘왕따’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수단이 채찍이든 당근이든, 또 어떤 국면에서든 북핵 포기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마지막 대화의 끈은 남겨둬야 한다는 주문이다.
대화 없는 제재, 북핵은 없고 신(新) 냉전 긴장만 고조
박 대통령은 전날 국회 연설에서 압박과 제재의 새로운 대북 정책 기조를 천명하며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체제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핵 보유를 체제 생존의 보루로 여기는 북한을 끝까지 몰아붙여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제재와 압박만을 고수하는 전략은 북한을 변화시킬 지렛대인 중국이 전혀 동의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효성이 떨어진다. 우리가 제재 그 자체를 목표로 북한을 몰아세우면 세울수록 중국은 북한 편을 들 수 밖에 없고, 결국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 냉전 구도만 지속시킬 따름이다. 북핵 문제는 온데간데 없이 미중 간 갈등이 커지고 군사적 긴장만 고조되는, 북한이 가장 즐기는 최악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는 압박과 제재만으로 단기간에 승부를 볼 성질이 아닌 만큼 중국의 역할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화 카드를 열어 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가 대화를 통한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해야 중국도 다양한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국익과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목표를 세워놓고 북한 압력을 가중시키는 과정에서 중국의 건설적 협력을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며 “미국, 일본과는 강력한 대북 제재 공조를 유지하되, 중국에겐 대화의 장을 열어 놔 북한과 중국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란 논리를 내세워야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일 공간이 생기고 국제사회도, 심지어 북한을 설득하는 논리로도 더욱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제재 압박은 협상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 아냐”
특히 우리가 향후 북핵 협상 국면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대화 채널은 이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 인사인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도 이날 한 강연에서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핫라인으로 미국과 구소련이 핵전쟁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지금같이 안보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모든 채널이 끊긴 남북간 연락수단의 재 가동을 역설했다. 더구나 북한은 이미 핵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북미대화만을 고집, 우리는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스스로 대화의 포석을 다져놓지 않으면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인사는 “한 국가의 체제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압박만으로 되지 않는다. 핵 문제도 마찬가지로 협상 테이블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인데 우리가 먼저 손을 놓으면 할말이 없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흥규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북한 정권 주도의 국면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제재와 압박을 강하게 얘기한 측면이 있지만, 마냥 달리기만 하는 기차에선 내릴 수 없다”고 했다. 제재 국면 이후 북미 대화와 6자 회담을 연결시키는 방안 등 돌파구 마련을 위한 전략적 복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교부처의 한 당국자는“지금은 북한으로 하여금 셈법을 바꾸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타이밍이다”며 “강력한 제재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 역시 북한의 핵 포기를 논의할 수 있게 만드는 협상 단계 중 하나다”고 말했다. 제재와 압박이 현 국면에서 협상 유도의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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