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고서 후퇴 ‘반쪽짜리’지만
신청 절반이 각하되는 실태 개선
환자단체 “중상해 범위 넓혀 보완”
의협은 “포퓰리즘 졸속 입법” 반발
올해 10월부터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혼수상태 등에 빠진 피해자나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의료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자동으로 조정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든 의료사고 피해자가 아닌 사망과 중상해 피해자만 자동조정이 시작돼 ‘반쪽 짜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7일 이 같은 내용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에 관한 법률’(일명 ‘신해철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망이나 중증상해 등의 의료사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나 유족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면 병원의 동의와 상관 없이 조정 절차가 바로 개시된다.
현행법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더라도 병원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조정이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병원이 조정을 꺼리기 때문에 접수되는 사건의 절반 이상이 각하된다. 2012년 조정중재원 출범 후 총 3,796건의 신청이 들어왔지만 조정된 사건은 1,607건(42%)뿐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조정중재원은 생겼지만 많은 경우 조정 시작조차 안돼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법은 통과됐지만 조정 자동개시에 해당되는 피해자의 범위가 당초 법안보다 축소된 점은 한계다.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당초 모든 의료사고 피해자가 조정을 신청하면 자동 개시되도록 만들어졌으나,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해 사망과 중상해 피해일 경우로만 조정이 자동 개시되도록 했다. 중상해의 기준은 시행령에 별도로 명시하기로 했다. 교통사고 특례법의 경우 중상해의 기준은 ▦생명유지에 불가결한 장기의 손상 ▦중요한 신체기능의 영구적 상실 ▦완치 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한 중대질병이지만, 이 법은 조건이 더 엄격해질 가능성도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는 사고 전 일상생활이 가능했지만, 의료사고 피해자는 이미 다른 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또 사망이나 중상해로 인정돼 조정이 자동으로 시작되더라도 의사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했다. 이의신청이 인정되는 경우는 환자가 병원 기물을 파손하거나 의사를 폭행한 경우 등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중상해 범위를 넓게 담는 방법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국회에서 폐기되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절충안으로 상임위를 통과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환자는 누구나 자신의 피해에 대해 보상 받을 권리가 있는데 피해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맞지 않다” 면서“의사들이 이의제도를 시간을 끄는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운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개정안 의결은 포퓰리즘에 휩싸인 졸속입법으로, 방어진료를 부추기고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사고 책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안은 2014년 1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요추천자 시술을 받다가 7시간 만에 급작스럽게 숨을 거둔 전예강(당시 9세) 양의 이름을 따 ‘예강이법’으로 불려왔다. 같은 해 10월 가수 신해철씨가 의료사고로 사망하고 유족들이 법 통과를 촉구하면서 ‘신해철법’으로도 알려졌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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