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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덮어놓고 단결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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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덮어놓고 단결하자고?

입력
2016.02.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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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만 있고 대책은 허술한 대통령 연설

정당한 비판마저 갈등조장과 분열로 몰 판

설득과 포용의 리더십 없이는 위기 못 넘겨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향후 대북정책 등에 관해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향후 대북정책 등에 관해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이, 무서워….” 낯선 단어들의 뜻풀이 캐기에 한창 재미 붙인 아이가 대뜸 묻는다. 털썩~. 어른들 어깨 너머로 본 TV 뉴스에서 설 연휴 때부터 줄곧 ‘핵’이니 ‘미사일’같은 단어들을 접해 온 열살 꼬마. 그 또래가 가질 법한 왕성한 궁금증일 뿐이겠으나 그 조그만 입에서 발화된 무시무시한 단어들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등굣길을 재촉하며 아이의 등을 떠미는 것으로 즉답을 피했지만, 그 순간 느낀 당혹감과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직업상 북한 문제를 주로 분석과 평가, 전망의 대상으로 대해 온 탓에 나 그리고 내 아이들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일상에 쫓기느라,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서, 툭 하면 핵ㆍ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무도한 정권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처지를 잊고 ‘안보불감증’에 젖어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대해, 그래서 더 궁금했고 기대도 컸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도입을 둘러싼 논란, 특히나 중국의 거센 반발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정말 불가피했고 절차는 타당했는지, 정부를 믿었다가 절망에 빠진 피해 기업들은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간 각종 제재와 압박을 무력화시켜 온 ‘김정은 정권의 폭주’를 멈춰 세울 브레이크가 과연 무엇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고, 믿음은커녕 불안감만 커졌다. 사드 배치 협의, 개성공단 중단을 둘러싼 합리적 의심과 비판을 모른 척 뭉개고 ‘이 모든 게 김정은 탓’이란 뻔한 결말로 내달았다. 요 며칠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잇따른 말 뒤집기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개성공단 임금의 북한 핵 개발 전용 논란에 대해서도, 홍 장관의 애초 발언 그대로 ‘그렇게 파악되고 있다’고 눙치고 지나갔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혼란이 빚어진 까닭도, 유엔 대북제재결의 위반 논란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정부의 대북정보 수집부터 분석, 판단 능력까지 모두 의심하게 한다.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더 크다. 북한의 ‘체제 붕괴’까지 언급하며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했으나, 분노와 단호함을 뒷받침할 세밀한 전략은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국제사회 공조에 기반한 대북 제재와 압박이 유일한 해법이라면 중국의 역할이 더없이 클 터인데, 섣부른 사드 배치 결정으로 긴장을 고조시켜 놓고는 ‘중국ㆍ러시아와의 연대도 계속 중시해 나간다’는 한마디 언급에 그쳤다. 불과 5개월여 전 중국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올라 서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민의 단결을 호소한 대목에선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공조를 끌어내고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하려면 ‘국민들의 단합된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말에 동의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다. “북한이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우리의 국론을 분열시키기 위한 선전ㆍ선동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등 이어진 말들은, 청와대와 여당의 눈에 국론 분열로 비칠 만한 갈등이라면 ‘북한의 선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씌울 수도 있다는 엄포로 들리기도 한다. 더구나 총선이 코앞이다. 민의의 대변자를 뽑는 선거에서 북한 문제를 포함한 각종 정책을 놓고 응당 치러야 할 논쟁들이 혹여 ‘국익을 해치는 정쟁’으로 매도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을 왜곡하거나 감추고, 합리적 의심과 비판, 논쟁을 죄악시하는 사회에서 단합을 위한 믿음이 싹틀 리 없다. ‘덮어놓고 단결!’로는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지금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대동단결 함성이 아니라 비판자들의 따끔한 지적,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싶어하는 평범한 국민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희정 디지털부문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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