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도시 부산이 흔들리고 있다. ‘부산 영화’를 받치고 있는 두 축인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영상위원회의 수장 선임을 두고 갈등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영화 중심 도시를 기치로 내건 부산의 장기 목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꼽히며 성장을 거듭해 온 부산영화제는 절벽 위에 놓인 형국이다. 부산시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재선임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화제는 요동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어떻게 치를지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 위원장은 부산영화제 창립 멤버로 수석프로그래머와 부집행위원장, 공동집행위원장을 거쳐 2010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 온 부산영화제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재선임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위원장의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이 위원장의 재선임 불발은 2014년 제19회 부산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되면서 촉발됐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산영화제가 상영을 강행하면서 영화제 수장인 이 위원장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다는 것이다. 부산시와 감사원은 2014년 11월 부산영화제에 대한 특별감사를 시작했고, 지난해 1월 이 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해 영화계의 반발을 불렀다. 배우 강수연이 6월 공동집행위원장에 선임되면서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사이의 갈등은 봉합되는 듯했으나 부산시가 감사원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며 양측의 갈등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영화계에서는 부산영화제와 부산시의 갈등이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영화계는 이 위원장 재선임 불가를 사실상의 해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벌써부터 업무 공백이 생겼다. 지난 11일 개막한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이 위원장과 강 위원장, 김지석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불참했다. 이 위원장 재선임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해외 출장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영화 외교전이 펼쳐지는 베를린영화제에 부산영화제 수뇌부 다수가 참석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선 국내외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파티 ‘부산영화제의 밤’도 열렸다. 한 영화인은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좋은 영화 선정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며 부산시와의 갈등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퇴진에 따른 국내외 영화인들의 반발도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해외 유명 영화인들이 최근 잇따라 이 위원장 지지를 밝힌 데 이어 해외 유수 영화제의 주요 인사들도 이 위원장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부산영화제와 부산시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해외 영화계 인사들의 부산영화제 방문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티에리 프리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해외 영화계 인사 112명은 17일 서병수 시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부산시장과 부산시에게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말 것을, 그리고 영화제 집행부와 선정위원회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위원장이 사임해야 할 어떤 합당한 이유를 알지 못하며 모호한 혐의로 그에게 가해진 검찰 고발에 대해서도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 영화인들도 움직이고 있다. 영화단체연대회의의 이춘연 대표는 “부산시의 결정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 위원장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일부 영화인들은 부산영화제 보이콧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한 영화인은 “앞으로 부산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할 일도, 부산에 갈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격앙된 글을 16일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부산영상위원회도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이달 임기를 마치는 오석근 위원장의 후임을 두고 ‘낙하산 위원장’이 오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마평에 오르는 주요 후보들이 영화 실무하고는 거의 무관한 인사이거나 현업을 오래 떠난 영화인으로 서병수 시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특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A씨는 과거 공직에 있으면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해 구설에 오른 친박 인사로 서병수 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국내외 영상 촬영을 유치하고 아시아의 젊은 영화인재들에 대한 교육 등 여러 사업을 관장하는 부산영상위 수장으론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오 위원장은 ‘네 멋대로 해라’(1991)와 ‘연애’(2005)를 연출한 영화감독이며 이전 박광수, 명계남 위원장은 각각 영화감독, 배우 출신이었다.
한 영화인은 “영상위원회 위원장은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한 지식도 있고 영화인들과의 네트워킹도 갖춘 사람이 맡아야 옳다”며 “시장이 자기사람 심듯 위원장을 선임하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이달 말 정기총회를 열고 새 위원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부산국제영화제 갈등 발단과 전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