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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들고 ‘까똑!’ 창작판소리 말 맛에 빠졌어요

입력
2016.02.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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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소설 '노크하지 않은 집'으로 창작판소리 만드는 이승희(왼쪽)와 이향하. '다른 장구보다 말 소리를 덜 잡아먹어서' 이번 공연에 동해안 별신굿에 쓰는 작은 장구를 쓴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김애란 소설 '노크하지 않은 집'으로 창작판소리 만드는 이승희(왼쪽)와 이향하. '다른 장구보다 말 소리를 덜 잡아먹어서' 이번 공연에 동해안 별신굿에 쓰는 작은 장구를 쓴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목소리는 없고 움직이는 소리 가득한 이곳/ 등 드르르르 물 내리는 소리/ 스스스 복도를 걷는 소리/ 어느 문 딸깍 끼익 열리는 소리/ 슬리퍼 다라락 다라락/ 쏴아 물 트는 소리/ 그사이 멀리서 까똑!”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지하 연습실. 장구 반주에 맞춰 소리꾼 이승희(34)가 춘향가도 심청가도 아닌, 하지만 판소리는 분명한 소리 한 자락을 뽑는다. 서사나 묘사 방식이 이전 판소리 다섯마당과 확연히 다른 이 작품은 김애란의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을 원작으로 만든 창작판소리 ‘여보세요’의 한 대목. 이승희가 “서울 신림동 녹두거리” 같은 구체적인 지명과 “까똑!” 같은 의성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동안, 고수 이향하(32)는 가락에 맞춰 북과 장구를 부지런히 놀린다.

대학에서 각각 판소리와 타악기를 전공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9년 창작판소리 단체 ‘판소리만들기 자’(이하 판만자)에 이승희가 단원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판마자 예술감독인 소리꾼 이자람과 연출가, 극장 제작 PD 앞에서 “춘향가 한 대목과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자람이 쓴 첫 창작판소리 ‘사천가’의 고수를 맡았던 이향하는 자연스럽게 이듬해 결성한 판만자의 단원이 되며 ‘억척가’(2013) ‘추물/살인’(2014) ‘이방인의 노래’(2015) 등 판만자가 만든 창작판소리의 고수를 담당했다.

“처음에는 자람이 언니가 대본 쓰고 작창 하고 소리까지 전부 다 했죠. 단원이 소리꾼 셋, 고수 셋으로 늘면서 작품 만드는 방식도 모두가 함께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어요.”(이향하) 판소리 대본을 쓰는 이자람이 어떤 작품에 ‘꽂히면’ 단원들이 모인다. 원작 소설을 읽고 ‘사전학습’과 토론을 이어가고, 이 의견을 참고해 이자람이 대본을 완성하면 본격적으로 작품 만들기에 돌입한다. 대본에 맞춰 소리꾼이 창을 만들고, 이 창에 맞춰 고수가 소리를 덧입히고, 멤버들이 모여 무대 동선을 만든다. 회의 후 각자 작업을 반복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대본을 뜯어고치는 이 과정을 단원들은 ‘테이블작업’이라고 부른다.

“전통 판소리는 이미 만들어진 창을 제가 배우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왜 계면조를 쓰고, 저 대목에서 왜 우조를 쓰는지 일단 소리를 내고 깨달을 때가 있어요. 창작판소리는 제가 처음부터 소리를 만드니까 같은 ‘에뛰뜨하우스’라도 어떻게 부르면 잘 들릴지, 한국어 발음에 집중하게 되죠.”(이승희) “이전 시대보다 훨씬 많은 사운드를 접하기 때문에 북만 갖고는 극의 리얼리티가 살지 않아요. 그럴 때는 다른 재료를 써보는데, 이 재료 중에 판소리와 ‘케미’를 이루는 건 또 따로 있더라고요.”(이향하) 이번 공연에는 동해안 별신굿에서 쓰는 작은 장구, 트라이앵글, 목탁과 유리병까지 8~9개 기구를 악기로 사용한다.

신작 ‘여보세요’의 시작은 “자람 언니가 원작 소설 읽으면서 갑자기 승희 언니가 생각나서”라고. 맑고 시원한 이승희의 목소리에 맞춰 신작은 원작 소설보다 화자인 20대 여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췄다. “신림동 녹두거리처럼 구체적인 팩트가 주는 말 맛이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하숙집 얘기지만 지금의 어느 조직, 어느 국가에 대입해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아요.”(이승희)

두산아트센터의 젊은 예술가 지원프로그램 ‘2016 두산아트랩’ 선정작으로 만든 신작 ‘여보세요’는 18~20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1인당 1매 사전 예매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한참 소리꾼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30대에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창작판소리를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불안하지 않을까. “그냥 재미있다고 모인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어요. 이걸로 큰 부귀영화를 기대하지 않아서 리스크도 없는 거 같아요 하하.”(이향하)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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