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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노동!

입력
2016.02.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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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나는 길에서 당근 한 봉지를 샀다. 한 봉지 가득 담은 게 천 원이었다. 그만큼은 다 먹을 수 없을 게 뻔했지만 너무 쌌기 때문에 샀다. 그러니까, ‘착한’ 가격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싸서’. 돈을 받는 손은 흙투성이가 된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직접 농사지은 당근을 싣고 온 것이 분명했다.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며 돌아오는 내내, “이게 이렇게 싸면 안 되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외조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다. 어느 날 온 가족이 매달려서 양파를 캤고 저물녘에 양파 자루가 그득 쌓였다. 사람들은 모두 땅강아지처럼 더러워졌고 몹시 지쳤다. 식사를 차릴 기력이 없었기 때문에 외식을 했다. 메뉴는 오리고기였다. 숙모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오늘 하루 종일 캔 양파 다 팔아도 이거 못 사먹는다.” 농사는 외조부모님의 평생을 떠받친 형식이기 때문에 지속되었다. 농사가 그분들의 생계였다면, 그날의 오리고기는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때부터 개인의 ‘노오오오력’이 빈곤 여부를 결정한다는 순진무구한 명제를 믿지 않는다.

내가 산 한 봉지에 담긴 것은 당근 몇 개가 아니다. 일 년 동안 그것을 기르고, 수확하고, 나르고, 판매하는 여러 겹의 노동과 비용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리고 다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농사를 짓는 사람의 생활을 꾸리는 집안일처럼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들이 있다. 당근의 가격을 책정하는데 이러한 요소는 모두 생선의 내장처럼 깨끗하게 도려내진다. 물론 여기에는 유통구조의 문제점이나, 농산물의 가격이 폭락한 역사적 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농산물의 가격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은 좀 더 분절적이고 파편화되었고, 많은 노동들이 비가시화되거나 평가절하 당한다.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노승영 역ㆍ사월의 책ㆍ2015)에서 이렇게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명명했다. 그림자 노동은 오로지 생산 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며, 직접적으로 상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의 비공식적 부문’으로 존재한다. 가사노동, 청소 노동, 직장 통근, 자기 계발, 스펙 쌓기, 회식 자리 참여 등 경제 활동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무고용, 무급의 활동이 그림자 노동에 속한다. 한편 그림자 노동과는 또 다른 개념으르 ‘숨은 노동’이 있다. ‘숨은 노동 찾기’(신정임 최규화 정윤영 송기역ㆍ오월의 봄ㆍ2015)와 ‘기록되지 않은 노동’(여성 노동자 글쓰기 모임ㆍ삶창ㆍ2016)은 경험담 위주로 여성―비정규직―‘알바’―장애인 노동을 다루었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조절한다고 했지만, 오늘날 시장을 지탱하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을 통해 위생적이고 쾌적한 장소, 친절하고 발 빠른 응대, 편리한 시스템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이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은폐하면 착취는 더욱 수월해진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무급이거나 저임금이다. 대표적인 예가 요즘 유행하는 ‘착한 가격’인데, 주로 인건비 절약을 전략으로 삼는다. 그러니 착한 가격보다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갈아 만든 가격’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문제들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노동의 주체와 소비자의 구분은 모호하다. 따라서 당근과 양파의 제값을 치르려면, 그만큼의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백원 천원이 아쉬운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불하라는 요청은 윤리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지적 측면에서는, 사소하게 시작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순간은 보려는 의지가 없을 때이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것이 된다. 보려고 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기에.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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