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유례없는 43개월 장기조사
“증거 충분” 사실상 제재에 착수
심사보고서도 이미 은행에 발송
은행권은 소명ㆍ소송 등 공동 대응
신뢰 타격ㆍ수천억 과징금 비상
“담합 결론 땐 끝까지 갈 것” 전의
공정거래위원회가 6개 은행에 대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담합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실상 제재에 착수했다. 향후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최종결론이 나오면 은행들은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피할 수 없을 전망. 은행들은 ‘짬짜미’(담합)로 결론 날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12년 7월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이래 3년7개월만에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었지만, 다시 뜨거운 공방이 예고된 셈이다.
2012년 1~7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공정위가 주목하는 시점은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의 기간이다. 주요 시장금리가 나란히 내려가는 동안, 유독 CD금리만 하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월 연 3.47%였던 통화안정증권 91일물 금리는 6월에 3.29%까지 떨어졌다. 연초 대비 0.18%포인트나 하락했다. 그 해 4월 3.50%였던 국고채 3년물 금리도 6월 3.29%로 0.21%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1월 3.55%였던 CD금리는 요지부동이었다. 특히 4월9일부터 기준금리 인하 직전인 7월11일까지 3개월 동안은 3.54%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시 은행들은 CD금리에 가산금리를 얹어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 여신금리를 결정했다. CD금리 역시 통안증권 금리와 비슷한 수준의 하락이 있었다면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은 한층 줄어들 수 있었다. 당시 CD금리 연동 가계대출 잔액이 총 196조원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은행들은 금리를 0.1%포인트만 덜 내려도 연간 약 1,960억원의 이자 수익을 추가로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이 같은 담합을 통해 은행들이 얻은 부당수익이 2010년1월~2012년7월까지 약 4조1,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3년 7개월간 이어진 조사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쉽게 결론이 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은행권 쪽에서 담합 제보가 있었고, 메신저 등 물증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져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은행들이 “금리 결정권은 우리에게 없었다”, “CD금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라는 금융당국의 ‘행정지도’가 있었다”며 반발하면서 조사가 난관에 부딪쳤다.
정권이 바뀌고 조사 착수 1년이 지나도 결론이 나오지 않자 금융권 안팎에선 “공정위가 잘못된 제보로 조사를 벌였고 결정적인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2014년 1월 서울중앙지법이 CD금리 담합으로 손해를 봤다며 소비자들이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담합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은행 쪽 손을 들어준 것도 공정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대래 전 위원장이 2014년 8월 4대 은행 현장조사를 추가로 실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히는 등 속도를 냈지만 노 전 위원장이 11월 갑자기 사퇴하면서 사건은 다시 흐지부지됐다. 2014년 12월 현 정재찬 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빠른 시일 내 처리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다 1년이 훌쩍 지난 최근에서야 담합으로 결론 냈다.
‘밀리면 끝장’ 다시 길고 치열한 공방 속으로
유례 없는 장기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공정위 안팎에서는 담합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게 중론이다. 4년 가까이 끌어오다 내린 결론이라 물러설 리도 없다. 담합이 있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심사보고서를 은행들에 발송한 것은 공정위가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다. 형사사건 처리 절차와 비교하면 검찰이 공소장을 거의 완성한 단계다. 공정위는 은행들에 최소 2주 이상의 기간을 주고 의견을 서면으로 받은 다음 전원회의에 이 사건을 회부하는데, 전원회의에서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은행권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소명과 이후 소송 등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담합했다면 무엇보다 부당 이자 수익을 얻었다는 것이어서 신뢰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천억원의 과징금도 물어야 한다. 이미 1,600여명이 참여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인적규모나 배상액의 확대도 우려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담합으로 결론이 나면 대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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