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모여 만두 빚기.. 밥상나눔, 한식세계화보다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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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모여 만두 빚기.. 밥상나눔, 한식세계화보다 낫네

입력
2016.0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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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요리 연구가로 활동 중인 김신정씨의 ‘김신정의 뉴욕에서 밥 먹기’를 격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를 받고 파이낸셜 내얼리스트로 일하던 김씨는 인생행로를 바꿔 뉴욕요리교육연구소(ICE)에서 공부한 뒤 내추럴 고메 인스티튜트, 헤이븐스 키친, 코리아 소사이어티 등 뉴욕 맨해튼의 다수 기관에서 한식 요리강사로 활동해 왔습니다. 현재 한식요리 강습 이벤트ㆍ컨설팅 회사 반찬스토리(Banchan Story) 대표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김신정(맨 오른쪽) 반찬스토리 대표가 연 설날 한식요리 강습. 음력설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뉴요커들이 만두를 빚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김신정씨 제공

한 해의 마지막 밤, 맨해튼 타임 스퀘어의 공이 떨어지는 걸 보며 ‘해피 뉴 이어!’를 외치는 시끌벅적한 새해맞이가 끝나면, 이곳 뉴욕에서는 대체로 조용하게 새해 아침을 보내게 된다. 1월1일에 먹는 떡국은 왠지 해장국의 느낌이 나기까지 한다. 음력 설은 양력 설보다 인지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근래 들어 ‘차이니즈 뉴 이어(Chinese New Year)’, ‘루나 뉴 이어(Lunar New Year)’로 불리며 뉴욕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올해는 뉴욕시 공립학교의 공휴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뉴욕처럼 인구가 다양한 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해피 루나 뉴 이어(Happy Lunar New Year)!”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다시 한번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을 내보기도 하고, 차이나타운의 설날 퍼레이드를 구경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처럼 흘러가는 날이기도 하다.

맨해튼에서나마 한국의 설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 설에 한국식 설날 요리강습을 열게 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설날의 의미를 기리고 싶은 동포와 한국 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있는 뉴요커들이 어우러졌던 이 클래스는 화려한 파티가 아닌, 그야말로 단란하고 가족적인 한국의 잔치 분위기를 끌어내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심이 현실화된 클래스이기도 했다. 한국 설날의 풍습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한 요리강습에서는 당면, 무, 부추, 표고버섯 등 우리에겐 당연하지만 뉴요커들에겐 생소한 한식 재료들을 같이 손질하며 두 시간 만에 갈비찜, 잡채, 삼색전, 떡만두국 등 7가지 설 음식을 뚝딱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명절 요리는 여성의 노동이라는 부수적인 부작용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날 강습에 모인 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생각하는 축제 분위기의 새해를 한국의 설날에 투영해 뉴욕에서의 음력 설을 기념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색이 고운 호박전, 부추전, 김치전을 세 팀으로 나눠서 굽게 하니,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금방 구운 전을 손으로 찢어 맛보면서 신나 했다. 한식 요리 강습에 참가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미 배추김치를 알고 좋아하지만, 묵은 김치로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건 또 새로운 맛의 세계를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실제 김치전이 삼색전 중 가장 반응이 좋았다).

한식 중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의 하나인 잡채에 대해서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이지만, 재료를 따로 볶지 않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공유했더니 이젠 집에서도 만들어 먹겠다고 좋아한다. 한국에서 떡국 한 그릇은 한 살 더 먹는 의미라는 설명과 함께 내어놓으면 모두가 한 번 더 웃게 되고 이 생소한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만두도 “이건 뾰족한 모양이 돋보이니 내가 만든 게 분명하다”는 둥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날 처음 만나 한식을 요리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하는 건 단순히 재료와 요리방법뿐 아니라 그 음식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와 연관된 즐거운 경험이 아닐까.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는 대도시 직장인들이 소중한 주말에 한국 요리라는 공통 관심사로 모여 거의 세 시간을 함께 만들어 먹은 설음식은 더 정겨웠고, 설 기념품으로 나눠준 수제 깨강정이 들어간 작은 복주머니도 모처럼 설날의 기분을 한껏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수년 전부터 뉴욕에서 한식 요리 강습을 해오며 항상 주제와 관련된 한식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해왔다. 불과 3, 4년 전에는 대략적인 소개가 대부분이었다면, 근래에는 참가자들의 반응과 제안을 토대로 간단한 소개 이외에 다양한 한식 이야깃거리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장’ 클래스에서는 장을 만드는 과정, 한식에 있어 발효식품의 중요성을 말하고, ‘만두와 찐빵’ 클래스에서는 고려가요 ‘쌍화점’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의 요리책 ‘음식디미방’에 거론된 만두의 종류를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 일부가 곁들여진 한식요리 강습은 단순한 조리 강습보다 훨씬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여기에 문답이 더해지는데, 이어지는 참가자들의 관심 어린 질문은 때때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김치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한 재료, 유기농 한국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곳, 떡볶이 떡을 집에서 만드는 방법(!), 사찰음식의 특징 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클래스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이야기 꽃이 피기도 한다. 이렇게 익힌 한식은 단순히 한 끼를 먹는 이상의 공감대와 이해를 얻게 된다.

바쁜 일상에 쫓겨 하루에 한끼 제대로 해먹기도 힘든 뉴욕의 현실이 서울의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철 음식, 건강한 먹거리, 간단한 조리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저녁거리 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관심은 통하는 부분이 많다. 가끔이나마 좋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공통 관심사인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소한 식재료들로 일상의 반찬들, 또는 특별한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재미가 더해지는 건 뉴욕에 살건 서울에 살건 마찬가지 아닐까. ‘한식세계화’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이웃, 친구와 함께 배우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신정 반찬스토리(Banchan Sto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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