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배기 남자 애가 집에서 숨진 뒤 8년 만에 유골상태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부모 학대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숨진 지 8년이 지나도록 취학연령 아동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한 후진적 행정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언뜻 보면 최근 경기 부천과 용인 등에서 드러난 친부모 아동 학대 살인 사건 중 하나로 착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내용은 2014년 6월 일본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본보 기사 중 일부다. 장소와 시기만 다를 뿐 사건의 내용이나 전개가 너무도 닮아있다. 당시 일본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상세히 살펴보면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이번 일련의 사건들과 유사한 점이 많아 또 한번 놀란다.
사망 당시 5살이었던 사이토 리쿠는 가정 불화로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로부터 자주 학대를 당했다. 경기 용인에서 발생한 큰 딸 암매장 사건처럼 한부모 가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버지는 사이토가 외출하지 못하도록 방에 가두고 최소한의 음식을 제공했는데, 이 대목은 지난 해 12월 인천 연수구 집에서 도망쳐 맨발로 발견된 11세 소녀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이 아버지가 일본 경찰에서 진술한 “식사량이 적어 이대로 가면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내용은 초등생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한 아버지의 경찰 진술과 비슷하고, 시체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해 테이프로 방과 창문을 봉한 행위는 여중생 딸을 숨지게 한 목사 부부의 수법과 일맥상통한다. 사이토가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에 방치돼있는 사실을 아동상담소 등이 파악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이웃 나라의 사건을 들춰낸 것은 단순히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 우연의 일치를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오히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본이 당시 사건을 계기로 취약한 아동보호 시스템을 재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등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작업에 착수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와 유사한 교육복지 제도를 가진 일본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자각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선제적 대응이 늦었음을 반성하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했다는 얘기다.
교육당국은 지난 해 연말 11세 맨발 소녀 사건이 터지고서야 교육적 방임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고, 최근 잇따른 아동 학대 사건을 밝혀낸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장기 결석 학생을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확대, 조사를 펴는 것도 잘한 일이다.
하지만 비단 아동뿐이랴. 일본에서는 2010년 연금수령을 위해 30년간 부모의 사망사실을 알리지 않고 집안에 방치했다 백골상태로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100세 이상 노인의 생존 여부 확인 작업에 나선 사례가 있다. 이를 통해 20명 가까운 노인이 오래 전 사망하고도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2013년 서울 방배동에서도 약사 아내가 공무원 남편의 사망 사실을 숨긴 채 휴직급여와 명예퇴직금 등 2억여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났으나 이 사건이 실종 및 행방불명자에 대한 전수조사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고려하면 단지 초ㆍ중학생에 대한 전수조사로 끝내서는 안 된다. 폭력 또는 금전적 이익 등 다양한 이유로 가족내에서 학대 받을 개연성이 있는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조사도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양극화, 무한경쟁, 개인주의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전통적인 가족관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이럴수록 가족의 테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감시망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일련의 끔찍했던 아동학대 사건들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한창만 전국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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