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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성전환 여자된 화가, 그 곁을 지키는 그녀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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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성전환 여자된 화가, 그 곁을 지키는 그녀의 아내

입력
2016.02.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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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니쉬 걸’. UPI코리아 제공
영화 ‘대니쉬 걸’. UPI코리아 제공

단 한 순간이었다. 마지못해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것은. 1920년대 덴마크의 풍경화가로 명성을 쌓던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는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 베게너(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부탁으로 새 하얀 드레스를 품에 안는다. 에이나르와 게르다는 몰랐다. 이 순간이 두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삶의 평행선이 될 줄은 말이다.

게르다는 발 부분 작업이 남은 상태에서 모델인 발레리나 울라(앰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자 남편 에이나르에게 모델 대역이 돼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었다. 서로의 예술적 재능을 존중하며 영감을 주고 받던 결혼 6년째 부부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여장을 한 에이나르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혼란을 느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매혹된 듯 눈을 떼지 못하고 거친 숨을 내쉰다. 성 정체성에 흔들린 그는 자신의 내면과 부딪히지만 이내 뿌리친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여성성이 에이나르를 붙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파티에 여장을 하고 참석하면서부터다. 이 역시 사람들 많은 곳을 피하던 남편을 이해한 아내의 권유였다.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릴리 엘베’라는 이름까지 짓는 에이나르.

하지만 게르다는 곧 후회했을 것이다. 파티장에서 남편 에이나르가 우연히 헨릭(벤 위쇼)을 만나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말이다. 만감이 교차했을 그녀지만 더 혼란스러워 하는 에이나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게르다는 그날 이후 더욱 말수가 줄어든 남편을 위해 붓을 든다. 릴리가 된 남편을 화폭에 담아 살아 숨쉬게 만들어 준다. 릴리의 눈빛 하나, 손 끝 하나 놓치지 않고 그 숨결 그대로를 캔버스에 살려내자 화랑에서는 전시회까지 열어주겠다며 릴리에 환호했다.

게르다가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열며 명성을 쌓아갈수록 에이나르는 점점 릴리가 되어 갔다. 과연 여자가 되고 싶은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 게르다는 달랐다. 고통 받는 에이나르를 지켜보며 여자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상담을 받으며 정신 병원을 전전하던 두 사람은 울라에게 추천 받은 의사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워네크로스 박사에게 게르다는 “남편을 여자라고 생각한다”며 수술에 동의한다. 그녀는 에이나르를 위해, 아니 릴리를 위해 또 한 번 자신을 버린다.

덴마크 여인이라는 뜻의 영화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1882~1931)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오롯이 에이나르가 성 정체성에 흔들리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여성 관객들이라면 시선은 게르다에게 더 머물 것이다. 에이나르를 사랑하고, 릴리를 위해 헌신한 게르다의 삶에 눈시울이 젖어든다. 여자가 된 남편을 받아들이고,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한 게르다의 내적 고통에 더 천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됐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그린 두 배우는 28일(현지시간) 열리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란히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누가 수상하건 상이 전혀 아깝지 않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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