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 ‘흥행 보증 수표’로 손꼽히는 배우 강동원. 데뷔 초기 잘 생긴 외모로 눈길을 끌었으나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경상도 말투와 돋보이지 않는 연기력 탓에 냉소적인 시선도 함께 받았다. 충무로가 캐스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멋진 역할보다는 다양한 캐릭터 소화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이제 강동원은 명실상부한 섭외 1순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놨다.
사실 방송계는 캐스팅에 더 민감하다. 한 번 소식이 전해지면 예비 시청자의 피드백이 즉각적이기 때문. 방영 중이라도 여론에 의해 시나리오가 바뀔 정도로 시청자가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작품의 첫인상이 초반 시청률을 결정하는 만큼 제작진의 고민도 깊어진다.
연기력이 좋지 않아서, 원작 캐릭터와 이미지가 맞지 않아서, 무리한 아이돌 캐스팅 때문에…. 여러 이유로 드라마 시작 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스타들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캐스팅 논란을 이겨냈을까. 팬들의 비난을 찬사로 바꿨던 결정적 ‘한 수’를 돌아봤다.
1. '응답하라 1988' 혜리
MBC '진짜 사나이'에서 주가를 올린 걸그룹 걸스데이의 혜리는 여세를 몰아 드라마에도 진출했다. 그는 2014년 JTBC '선암여고 탐정단', 2015년 SBS '하이드 지킬 나'에 연달아 출연했으나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tvN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이로 발탁되자 부정적인 시선이 따라왔다. 연기력 논란이 부각된 것이다. 아이돌 가수 이력도 혜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혜리는 촬영에 앞서 3개월간 연습을 진행했다. 미리 나온 1~4회 대본을 달달 외우고 덕선이의 말투와 걸음걸이, 춤까지 연구했다. 꼼꼼한 준비 덕이었을까. 그는 첫 방송부터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응답하라 1988' 종영 후 혜리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 때문에 덕선이란 사랑스러운 아이가 미움 받을까 걱정했다"고 마음 고생을 털어놓기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2. '치즈 인더 트랩' 김고은
영화계에서 연기파로 입지를 굳힌 배우 김고은도 드라마판에서는 캐스팅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서 여주인공 김고은이 원작인 웹툰 주인공 홍설과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미 물망에 올랐던 걸그룹 미쓰에이 수지가 팬들의 거센 반발에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던 터였다. 김고은 역시 출연을 거절하다가 제작진의 설득으로 합류했다.
그는 어둡지만 강인한 성격의 홍설 캐릭터를 자신에게 맞는 인물로 재해석했다. 극중 홍설은 좀 더 어리숙하고 사랑스러워졌다. 자취하는 여대생의 생활연기도 과장되지 않게 녹여냈다. 10회까지 방영된 '치즈인더트랩'은 평균 6% 시청률로 순항 중이다.
3. '미생' 이성민
tvN 드라마 '미생'을 통해 '국민 멘토'라는 별명까지 얻은 배우 이성민. 부하 직원을 아끼는 오상식 과장 역으로 '미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도 처음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원작의 오 과장과 이성민의 외모적인 차이 때문이었다. 드라마 방영 전 가장 싱크로율이 떨어지는 캐릭터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이성민은 '미생' 제작발표회에서 "원작의 오성식처럼 눈을 어떻게 빨갛게 표현하겠나. 그런데 그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안에서의 신념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후 그는 외모적으로는 일치하지 않지만 원작 캐릭터의 성격을 꼼꼼하게 분석해 연기력을 새삼 재평가 받기도 했다.
4. '지붕뚫고 하이킥' 황정음
'믿고 보는' 배우 황정음도 발연기로 눈물을 쏟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돌 출신으로 SBS '루루공주', MBC '에덴의 동쪽' 등에 출연하고도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던 그는 MBC '지붕뚫고 하이킥'을 통해 연기 변신에 성공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9년 당시 김병욱 PD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황정음을 본 후 그를 발탁했다. 평소 애교있는 황정음의 성향과 극중 캐릭터의 성격이 잘 맞아 떨어질 것이라 판단한 것. 이전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 받은 황정음은 60부작인 SBS '자이언트'로 정극에 도전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다. 황정음은 MBC '내 마음이 들리니', SBS '비밀', MBC '킬미 힐미' 등 다양한 장르와 역할에 도전하며 차근차근 성장했다.
5. '궁' 윤은혜
만화가 원작인 2006년 드라마 '궁'은 제작 전 네티즌을 대상으로 캐스팅 투표를 실시했다. 한복이 잘 어울리고 캐릭터와 이미지가 맞는다는 이유로 배우 이유리, 구혜선이 여주인공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투표 결과와는 다르게 배우 윤은혜가 발탁되면서 팬들의 반발이 일었다. 예능을 통해 '소녀장사' 이미지를 얻게 된 윤은혜가 작품 속 여린 여주인공의 역할을 소화하지 못할 것이란 여론이 다수였다. 특히 윤은혜가 가수에서 연기자로 나서는 첫 작품이라 연기력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윤은혜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예상 외의 연기력을 선보여 논란을 잠재우고 시청률을 20%대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MBC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을 흥행시키며 입지를 굳혔다. 한편 '궁'의 후속작으로 '궁S'가 제작됐으나 주연의 미숙한 연기가 문제가 되며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