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납치-학대 경기도 운영 교정시설
생존 피해자, 조사위원들과 첫 만남
암매장지 돌아보다 끝내 울먹여
“탈출하다 잡히면 며칠씩 맞고 죽으면 바다에 버리고 밭에 묻었다”
15일 오전 11시 경기 안산시 선감동 경기창작센터 세미나실. 경기도의원과 조사위원회 소속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파카 차림에 모자를 쓴 초로의 남자들 10여 명이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남루한 모습이었지만 이날 조사위원과의 첫 만남이라는 사실에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이들은 1942~1982년 바로 이곳에 자리했던 ‘선감학원’에서 강제노역, 폭행, 굶주림 등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피해자들이다. 지금은 전국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위원회와의 간담회 자리가 있다고 해서 생업을 마다하고 달려와 자리했다.
‘선감학원 피해자 생존자회’ 김양배 총무는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의 아픔을 사회문제화 해줘 감사하다”면서 “앞으로의 활동상황을 시간을 두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남경순(수원) 조재훈(오산) 의원 등으로부터 ‘경기도 선감학원 아동청소년 인권유린사건 피해조사 및 위령사업에 관한 조례’ 제정 설명을 듣고 이달 말 진혼제 및 음악제 개최 방안을 간략하게 들은 이들은 공동묘지로 쓰였던 지척의 동산을 찾았다.
100여 기의 다 허물어진 봉분들을 보자 이들은 꼭꼭 감춰둔 감정의 골을 드러내고 말았다. 결혼 적령기의 외아들에 누가 될까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이름을 밝히길 꺼린 A씨는 “한번 탈출했다 잡혀 며칠을 맞은 적이 있었다”면서 “그 뒤로도 너무 고통스러워 밤에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해변으로 떠내려와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치를 떨었다. 그는 “굶어 죽고 맞아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바다에 버려지고 밭에 묻혔다”면서 “어린이들을 동물처럼 학대한 선감학원의 진상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1960년대 초 이곳에 끌려왔다는 허이동(60)씨는 “달리기를 잘했던 쌍둥이 형이 이곳에서 배가 고파 담요를 뜯어먹다 죽었다”면서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밝히기 위해 애써주는 위원회가 고맙다”고 울먹였다.
간담회를 주재한 정대운(광명) 의원은 “이 시설을 36년간 운영한 경기도를 대표해 피해자들께 공식적으로 사과를 드린다”면서 “잘못된 과거를 묻어버리지 않고 재조명해 떳떳한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은 “공동묘지의 봉분과 봉분 사이도 다 묘지로, 동산 전체가 무덤이라는 증언도 있지만 정확한 자료가 없어 사망자와 생존자 수를 밝힐 수가 없다”면서 “영구보존문서인 매ㆍ화장허가서를 관할기관이었던 부천시나 안산시, 옹진군 등에서 찾아낸다면 진상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물자를 제공하기 위해 1942년 선감학원을 세우고 어린이들을 강제 입소시켜 노역, 폭력, 학대, 고문 등을 자행했다. 광복 이듬해 선감학원은 경기도로 이관됐고 1982년 폐쇄될 때까지 36년간 추가로 인권유린이 자행돼 왔다. 현재 인천에만 100여명의 생존자 있는 것으로 전해질 뿐 전국에 몇 명이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범구기자 eb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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