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보건소 특정 기관 밀어주기, '떳다방’식 영업에 개인정보 유출 우려
엑스레이 촬영 등 대충 대충 한 뒤 검진결과 통보는 어물쩍 "총체적 부실"
/그림 1 건강검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도입된 국가 출장 건강검진이 지역 보건소의 특정 기관 밀어주기와 부실 검사 등으로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건강 캠페인에 참가한 노인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건강검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농어촌 등지를 대상으로 도입된 국가 출장 건강검진이 특정 기관 밀어주기와 부실 검사 등에 따라 애초 의미를 잃고 있다. 출장 검진의 관리를 책임진 지역 보건소 중 일부는 특정 기관에만 장소와 편의를 제공해 유착 의혹을 사고 있고, 적지않은 검진기관들이 관리 소홀을 틈타 ‘떳다방’식 영업 후 부실 검진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충북의 한 군 보건소는 지역민 대상의 출장 건강검진 기관으로 특정 2개 기관만을 지정한 뒤 이들 기관에만 장소와 각종 편의를 제공 중이다. 이 보건소가 출장 검진기관 수를 제한한 표면상의 이유는 ‘업무 편의성’ 때문이다. 보건소 관계자는 검진기관 수 제한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출장 검진기관 수가 워낙 많아 다 들어 올 경우 보건소 본연의 업무가 지장 받을 수 있어 지정기관 수를 제한했다”고 밝혔다.
이 보건소가 ‘지정기관’으로 정한 2개 검진기관은 그동안 이 지역 지자체와 결핵 등 사업을 함께 해 온 곳들이다. 그러나 지역 보건소가 출장 검진기관 수를 임의로 제한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 ‘지역보건법 시행규칙 제9조’에 따르면 출장검진 기관은 검진 실시 3일 전까지 건강검진 등 신고서를 관할 보건소에 제출하면 출장 검진을 할 수 있다. 지역 보건소와 특정 검진기관 간의 은밀한 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지역 보건소가 건강검진 안내문 대신 배포
이 보건소가 제작해 주민들에 돌린 건강검진 안내문은 ‘유착’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물증이다. 본보가 입수한 문제의 건강검진 안내문은 보건소 명의로 돼 있어 마치 출장 검진의 주체가 검진기관이 아니라 보건소인 것처럼 제작돼 있다. 또 검진 전에 안내문을 지역민에게 돌리는 것도, 이후 상담 전화를 받는 쪽도 모두 지역 보건소가 대신 해 주고 있다. 문제의 안내문을 보면 ‘건강검진은 가족을 위한 투자입니다!’라면서 검진 받을 것을 유도하는 문구가 맨 위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고 끄트머리에는 상담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이는 “(보건소가 출장 검진기관에)협조해 주는 것은 장소 제공 밖에 없다”는 보건소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보건소 관계자는 의혹을 추궁하는 질문에 “보건소 명의로 안내문이 배포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 “문제가 있는지 점검 하겠다” 등 발뺌으로 일관했다. 보건소 측은 “왜 특정 검진기관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일부 검진기관의 항변에는 “국가적인 일을 수행하는 기관들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보건소의 특정 검진기관 밀어주기는 예상 못한 후유증까지 낳고 있다. 이른바 ‘떳다방’ 식 출장검진 서비스의 등장을 부채질 한 것. 즉, 지역 보건소의 밀어주기 대상에서 배제된 나머지 출장 검진기관들이 지역 경로당이나 학교 운동장 등을 거점으로 게릴라식 수검자 모집과 부실 검진 제공으로 또 다른 후유증을 낳고 있다.
‘떳다방’식 출장 검진을 하는 기관들은 대부분이 규모에서 밀리는 영세한 곳들이다. 이들 기관이 틈새 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것은 지역민들의 개인정보를 손에 쥔 덕이다. 이들 기관은 지역 노인회관이나 경로당, 전통시장 등에서 확보한 전화번호부를 이용해 해당 지역 노인들에게 국가 건강검진을 받을 것을 연중으로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수검자 정보 확보가 불법으로 이뤄지는 데다 개인정보 누출의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일부 기관은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개인정보를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출장검진 관계자는 “(개인정보) 구입 비용은 1만명 당 100만원 선”이라며 “개인정보 매매는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국가건강검진사업을 맡고 있는 건강보험공단도 일부 출장 검진기관들의 이런 행태를 알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검진기관들이 마을 등에서 확보한 전화번호부와 과거 건강검진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검진을 유도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엑스레이를 기념사진 찍듯 대충 검사
‘떳다방’식 출장 검진의 또다른 문제점은 검사 자체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일부 기관은 많은 수검자들을 정해진 시간 내에 검사하느라 엑스레이 촬영을 기념사진 찍듯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출장 검진기관에서 15년 째 일하고 있는 방사선사 A씨의 사례는 부실 검사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A씨는 이 바닥에서 ‘베테랑’으로 통한다. 엑스레이 촬영을 1시간 동안 20명 이상 끝마치고 있어서다. A씨는 “대학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하듯 하면 100명이 넘는 수검자를 정해진 시간 내 촬영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출장 검진기관의 한 행정요원은 “이렇게 검사를 해서 암 등 각종 질환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검진 후 사후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출장검진을 받은 후 검진결과를 받지 못한 노인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출장검진기관은 검진일로부터 15일 이내 검진자들에게 검진결과서를 송부해야 한다. 검진결과서를 받지 못한 일부 노인들은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없어 오지 않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속출하고 있다. 한 출장검진기관 관계자는 “1,2월에 출장검진을 하고 이후 잠수를 타는 이들이 많다”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건강이 아니라 공단에서 받을 청구액”이라고 말했다. 염불보다 젯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 “집중점검”에도 연례행사로 되풀이
건보공단에 따르면, 일반건강검진의 경우 공단이 출장검진기관에 지급하는 1인 평균 검진료는 4만7,146원이다. 출장검진기관이 하루 평균 70명 정도 검진하면 1주일에 약 1,980만원의 거금을 챙길 수 있다. 출장검진 성수기인 1,2월 두달 동안 매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꼬박 출장검진을 한다면 설날연휴를 제외하더라도 제법 큰돈을 만질 수 있다.
부실 검사가 양산되는 데는 인력 문제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세한 기관들이 돈을 아끼려 전공의 채용에서 탈락한 의대 졸업생이나 현직 은퇴 의사 등을 단기 아르바이트 문진의로 고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용불량 등 개인 신상문제로 의료기관에 합벅적인 등록이 불가능한 의사들도 출장검사 일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출장 검진의 일을 찾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살펴본 결과 ‘개인문제로 의료기관에 의사등록은 불가능하다’라는 자기 소개 글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점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출장 검진 인력에 대해 실명제를 도입할 것을 지난달 17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권고했다. 앞서 권익위 조사 결과 70~80대 고령 의사들이 출장검진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수검자가 많은 날에는 출장 검진기관 소속 운전기사나 행정요원이 신체 계측을 실시하는 불법 행위도 적발됐다. 권익위의 권고에 대해 건보공단은 “2017년 1월부터 검진인력 실명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방침을 밝혔지만 싼 값에 의료인을 확보하려는 출장 검진기관과 단시간 내 목돈을 만지려는 일부 의료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실명제가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공단 측은 출장검진의 문제점을 따지는 질문에 대해 “1~2월 농어촌 지역 출장 국가검진이 몰림에 따라 집중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건보공단의 지난해 1~2월 출장 국가검진 점검률은 43.5%이다. 그럼에도 탈법적 상술이 판치는 출장 국가검진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고 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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