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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공영방송이 뭐예요?

입력
2016.02.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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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시그널'. tvN 제공
tvN 드라마 '시그널'. tvN 제공

최근 드라마 보기에 재미를 붙였다. 금, 토요일 저녁에 별일이 없으면 ‘시그널’을 ‘본방사수’한다. ‘치즈 인 더 트랩’도 리모콘 놀이를 하다 눈에 들어오면 잘 걸렸다는 심정으로 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 내게 드라마는 저질의 동의어였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것은 성인군자의 행동이라 여겨질 정도로 복잡다단한 패륜 관계가 드라마의 소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엄마가 재혼해서 얻은 아들과의 결혼을 시도(MBC ‘압구정 백야’)하는 내용 등이 공영방송의 황금시간대를 차지해왔다.

지상파란 권위와,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전달력을 지닌 공영방송의 막장 드라마가 요지부동의 현실로 굳어진 때 tvN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그널’은 스릴러의 재미에 사회비판까지 갖췄다. 고지식한 형사들이 조직적 방해를 뚫고 돈과 권력을 쥔 상류층 용의자를 검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시그널’ 이전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응답하라 1988’이 지닌 순기능은 말해 무엇하랴. 골목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긴 이 드라마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공익성을 띤다. 드라마에 덧붙여 tvN의 여행 예능프로그램 ‘꽃보다’시리즈도 즐겨 본다. ‘SNL 코리아’와 ‘코미디 빅리그’도 애호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여러 프로그램을 즐기다 보니 tvN을 중심에 두고 리모콘을 누르는 버릇까지 생겼다. 방송 권력의 이동을 실감한다.

tvN이 책임을 방기하는 공영방송을 대신해 건전한 오락적 기능을 하고 있으니 고맙기도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방어심리가 생긴다. 대기업 방송이 세력을 확장하며 여론 형성에까지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면? 하지만 곧 현실을 각성하게 된다. tvN은 JTBC와 함께 5대 방송사라는 수식이 붙지만 보도 기능은 없다. 대기업의 방송 진출이 여론 왜곡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다행이다.

tvN 같은 상업방송 덕분에 그나마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다고 하나 정작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게 해줄 보도프로그램은 마땅히 찾을 수 없다. 예전엔 공영방송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꽤 많이 의지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과연 공영방송이 제대로 된 보도를 하고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소유구조는 공영이지만 조직의 운영 방식과 방송 내용은 국영 못지않다는 비판이 많다. 노조 활동을 한 기자와 PD를 명확한 근거 없이 해고했다는 주요 간부의 발언 녹취록이 공개됐는데도 뾰족한 해명조차 내놓지 않는 MBC 경영진, 이런 상황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방송문화진흥회(MBC를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이게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취급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릴레이 행태를 보다 보면 공영방송의 공정한 보도를 기대할 수조차 없다.

지난 연휴 미국 드라마 ‘나르코스’를 보며 너무나도 뻔한 이치를 새삼 깨달았다. 희대의 마약 거상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를 결딴내는 모습을 드라마는 서스펜스를 곁들여 보여준다. 대통령 후보 암살, 법무부 건물 테러, 여객기 테러 등을 일삼은 에스코바르의 비행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잔인하다. 믿기지 않아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도 인터넷을 뒤져야 했다. 이런 에스코바르의 몰락을 부추긴 것은 언론이었다. 방송과 신문은 테러를 당하면서도 에스코바르의 범죄 행각을 보도했고 그는 조금씩 입지를 잃었다.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던 콜롬비아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밑바탕은 용기 있는 언론보도였다.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 환경은 방송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정권이 종합편성채널을 4곳이나 허가해주며 공영방송을 비롯한 여러 방송사들이 생존전쟁에 내몰렸다. 공영방송이 공영성을 지키기 힘든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그래도, 아무리 힘들어도 공영방송이 이름값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자녀가 “공영방송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무엇보다 리모콘을 이리저리 누르는 재미를 즐기고 싶다.

라제기 엔터테인먼트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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