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한 해 수천명의 관객을 만난다. 근래 있었던 두 번의 공연에서 만남이 주는 감동을 경험했다. 당진에서 김려령 작가와의 북콘서트가 있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작가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관객들이 퇴장하면서 행사장은 약간 어수선해지는 시간이다. 나는 공연 장비를 챙기며 틈틈이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작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함께 문예창작과를 다녔던 친구가 찾아온 거였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으며 감격의 재회를 했다. 한 사람은 작가로, 한 사람은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친구는 준비해온 작가의 새 책을 건네며 사인을 청했고, 작가는 유명인의 선물이 아닌 친구의 마음을 꼭꼭 눌러 사인을 했다. 누가 봐도 그날의 주인공은 작가였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친구를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세우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말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잘 살아줘서 고마워, 앞으로 더 잘 살아갈 거라 믿어.
창원에서 열렸던 북콘서트에서는 김선영 작가와 어느 고등학생 독자와의 만남이 눈길을 끌었다. 수줍게 책을 내밀며 이름을 밝힌 소녀를 보며 작가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아니, 네가 ○○이란 말이니?” 작가와 소녀 독자는 그날 처음 만났지만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우연히 소녀가 보낸 이메일에 작가가 따뜻한 답장을 보냈고, 이후 두 사람은 꾸준히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작가가 몇 차례 요청했음에도 소녀는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가 소녀의 고향을 방문한 그날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날의 주제도서도 ‘시간을 파는 상점’이었는데, 그 소설 내용이 바로 상점 주인이 얼굴을 모르는 고객의 요청을 들어주는 거였다. 자신의 소설이 마치 현실로 걸어 나온 것처럼 독자를 만난 작가의 기쁨이 어떠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날의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진행자였던 내가 한 중학생을 불러내어 작품을 읽은 소감을 청했더니 그 여학생이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그 쪽지가 나온 배경은 이렇다. 딸이 그 소설을 읽고 아빠에게 권했더니 아빠는 마지못해 책을 받아 들었단다. 무척이나 바쁜 아빠에게, 그것도 청소년 소설을 내밀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아빠는 하루 만에 소설을 다 읽고 딸에게 돌려주었다. 책 속에 아빠의 쪽지가 들어있었다. “사랑하는 딸, 너로 인해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고마워!”로 시작하는 쪽지를 소녀가 다 읽음과 동시에 숨죽이며 듣고 있던 모든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좋은 만남은 만남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안겨 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사람을 만나고, 한 권의 책을 만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고, 들으면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그 모든 만남에는 감동이 있다. 없다면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만남을 말한다. 누군가를, 뭔가를 만난다는 건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벅찬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인생은 그 얼마나 꽉 찬 인생인가. 우리가 누군가와 만날 때 그 만남이 감동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 모든 힘을 다해 생의 질문에 답을 해온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지 만나는 상대에게 희망이 된다. 앞서 이야기한 두 작가와 관객들을 보면서 그걸 느꼈다. 두 작가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청소년 문학가고 끊임없이 좋은 작품을 쓰고 있다. 김선영 작가는 오랫동안 상담봉사활동을 하고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고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물로 나온 작품은 청소년 독자들과 만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누군가와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린다. 희망의 현주소는 바로 거기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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