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대수의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떻게 나 자신과 영원히 산단 말인가”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다. 무슨 예술가 특유의 엄살로도 여겼던 것 같다. 초판이 1998년에 나왔으니 그가 갓 쉰 무렵이다. 그때 나는 스물여덟이었다. 허심탄회하게 단번에 써 내린 듯한 말들이 힘차 순식간에 읽어 치웠었다. 열정과 과오, 사랑과 실연, 비탄과 환희 등이 노래로 승화되는 과정을 훑는 게 자못 흥미로웠었다. 몇 년 후 그를 실제로 만났다. 나는 서른을 넘겼고 그는 쉰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좋은 의미에서든 힘겨운 의미에서든 삶과 예술이 일체화된, 보기 드문 예술가였다. 마음이 일그러질 때나 기쁠 때나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아픔과 끝없이 재생될 열정이 번갈아 충만해 보였다. 그때 문득 인용한 글이 떠올랐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호탕한 너털웃음으로 갈음하는 그의 얼굴이 속 깊은 아픔을 스스로 희화하는 듯 보였던 거다. 자위 같기도, 자폭 같기도 했다. 언뜻 죽음이나 파멸 등이 웃음에 비치기도 했다. 돌연 그가 쓴 말이 이해됐다. 나도 다를 바 없다는 공감이 짐짓 뼈저렸다. 이후 내게도 아플수록 낄낄대고 슬플수록 짓까부는 웃음이 야누스처럼 메아리치는 걸 느꼈다. 그렇게 마흔 중반을 넘기며 나 자신과 이혼하고 싶다는 충동을 매번 삼킨다. 내가 나를 견디기 힘든데 누가 나를 견디겠는가, 자인하고 자괴하면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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