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나라 캐나다를 묶은‘단풍잎 국기’
‘디지털 스토리텔러’라는 직업을 가진 로만 마스(Roman Mars)는 2015년 3월 깃발디자인을 주제로 한 TED 강연에서 좋은 깃발 디자인의 5가지 요소를 이렇게 소개했다. 단순할 것, 의미 있는 상징을 쓸 것, 두세 가지 기본 색만 쓸 것, 글이나 문장(紋章)은 피할 것, 차별적일 것(Be Distinctive). 강연에서 그는 미국 여러 도시의 깃발들을 대조하며 잘 디자인된 깃발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들려주며, 좋은 깃발의 사례로 캐나다 국기를 보여주었다. 2월 15일은 캐나다 국기 ‘단풍잎 깃발(Maple Leaf Flag)’이 제정된 날이다.
캐나다는 17세기 이래로 프랑스와 영국의 긴 식민 통치를 겪었고, 두 나라 이민자들은 모피 무역 시절서부터 정치ㆍ문화적 갈등을 겪어왔다.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1차대전 뒤 캐나다는 영국 여왕이 국왕인 입헌군주국이 됐지만, 프랑스계의 요구를 수용해 영어와 더불어 불어를 국어(공식언어)로 쓰고 있다.
국기는 17세기 내내 프랑스 대륙군의 문장이 담긴 깃발(현 퀘벡주 깃발)이 사용됐고, 18세기부터는 영연방기를 이리저리 변형해 써왔다. 1925년과 46년 두 차례 국기 제정작업을 진행했지만 사실상 성과 없이 중단됐다. 의회를 사로잡을 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양분된 이민자 그룹의 마음을 하나로 사로잡을 만한 상징을 찾지 못한 까닭이 컸을 것이다.
지금의 국기는 연방 출범 100주년(67년)을 앞두고 레스터 피어슨(Lester Pearson) 총리 정부가 46년 공모에 출품된 2,600여 개 작품 가운데 선택한 거였다. 영국 왕실 상징색인 적ㆍ백 바탕을 압도하는 단 한 장의 붉은 단풍잎. 그들은 정치 민족 사상 이념을 넘어 자신들이 새로 택한 조국 캐나다의 아름다움을, 단풍 숲의 장관을 국가의 깃발에 새겼다. 대서양 건너 대륙에 첫 발을 디딘 그들의 조상들을 한눈에 압도한 것도 아마 캐나다 동부 단풍의 붉은 빛이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캐나다(영국) 여왕은 1965년 2월 15일 단풍잎 국기를 승인했다.
사실 캐나다 국민들은 정부와 의회가 깃발을 정하기 훨씬 전부터 단풍잎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써왔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하계 올림픽 캐나다 올림픽 대표선수단의 마크도 단풍잎이었다. 그 상징으로 그들은, 로만 마스가 좋은 깃발의 기능이라고 말한 것처럼, 자긍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좋은 깃발은 그렇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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