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 14일 밤 11시. 외제차 동호회원인 이모(33)씨는 이날 낮 카카오톡으로 ‘번개모임’을 갖기로 하고 애마 BMW를 끌고 서울-춘천고속도로 남양주 톨게이트로 향했다. 이곳에서 회원 5명과 만나 춘천까지 ‘자동차 경주’를 즐길 참이었다. 첫 번째 차량이 떠나면 5초 뒤 두 번째 차량이 출발해 앞차를 따라잡아 승자를 겨루는 방식이었다.
이씨는 거침없이 액셀을 밟았다. 제한속도 시속 100㎞인 고속도로에서 속도계 바늘은 어느덧 시속 200㎞를 가리켰지만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머리 속엔 온통 앞서 달리는 두 차를 제칠 생각뿐이었다. 이씨는 깜박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는 이른바 ‘칼치기’를 반복하며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난 밤 11시55분, 경기 가평군 송산터널 인근에서 다른 회원 김모(30)씨의 벤츠가 곧 잡힐 듯 눈 앞에 다가왔다.
짜릿한 역전의 순간을 고대한 순간 이씨는 벤츠를 들이받았다. 터널 안 차량 정체 상황을 모르고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한 것이다. 벤츠는 충격에 밀려 앞서가던 또 다른 회원 강모(32ㆍ여)씨의 인피니티와 추돌했다.
별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은 경주 사고 차량은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한 뒤 일반사고로 위장해 수리비 명목으로 7,800여만원을 타냈다. 그러나 폭주 레이싱을 의심한 보험사 제보와 목격자 신고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사에 나선 끝에 결국 덜미를 잡혔다.
조사 결과 30대 초ㆍ중반인 동호회원들은 정보기술(IT) 업체 직원과 서울 강남의 유명 영어강사 등으로 일하면서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버는 고소득자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취미생활로 속도를 즐겼다’고 진술했을 뿐, 끝까지 레이싱 사실은 부인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도로교통법상 공동위험행위와 사기 혐의로 이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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