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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표 작가의 근사했던 삶, 실제론 기만ㆍ모순 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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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표 작가의 근사했던 삶, 실제론 기만ㆍ모순 투성이

입력
2016.02.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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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 지음·박영원 옮김

문학동네 발행·각 924쪽·2만8,000원

존 치버의 편지

존 치버 지음·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발행·792쪽·2만5,000원

존 치버의 일기와 편지들은 인간 내면의 만화경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들이다. 문학동네 제공
존 치버의 일기와 편지들은 인간 내면의 만화경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들이다. 문학동네 제공

위대한 작가들의 내밀하고 사적인 기록들, 이를테면 일기나 편지 같은 글들을 읽고 싶은 마음엔 일종의 관음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뻔한 소리는 일단 못 들은 체하자. 인간의 한 샘플로서 작가는 자기 자신을 묘파하기에 얼마나 적절한 직종인가. 출판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한 채 자기 자신에 들이댄 내시경으로 인간 내면의 허위와 상충하는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이 은밀한 장르들은 전기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총체성을 구현한다.

최근 출간된 미국 소설가 존 치버(1912~1982)의 일기와 편지는 각기 1,000쪽에 달하는 분량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놀랍도록 솔직한 서술 태도로 장르 고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책들이다. 풍요롭고 안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절망을 주로 그려온 그는 세상의 모든 단편소설 거장들에게 부여되는 칭호인 체호프 중 ‘교외의 체호프’라 불리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해온 작가다. 탁월한 문장가로도 유명한 그는 작가 경력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안 되던 1940년대 말부터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인 1982년까지 총 29권의 일기를 썼다. 자식들에게도 들춰보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던 비밀스런 일기들이었건만, 노년에 이르러 돌연 아들에게 꺼내 보이며 출판을 허용했던 이유는 뭘까. “나는 상표처럼 돼 버렸어. 콘플레이크나 시리얼처럼 말이야” 한탄하던 말년의 아버지를 상표가 아닌 한 인간의 초상으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대표할 만한 20분의 1가량의 일기를 추려 책으로 만들었다.

책 속에 드러난 치버의 모습은 “교외의 고풍스런 농가에 살며 사냥개를 키우는 예의 바른 영국 신사”같은 이미지를 전면으로 배반한다. 열렬한 일부일처제의 옹호자이자 이성애자처럼 보였던 그는 일기 속에서 끊임없이 남자들을 욕망하는 양성애 성향으로 괴로워하며 자신을 혐오한다. “인생에서 알게 된 모든 것”이라고 표현했던 그의 아내 메리와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듯 보였지만, 그 결혼생활이란 기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평생 동안의 전쟁과도 같았다. "오늘 저녁식사를 하던 중 앞으로 내가 잊어야 하고 또 다시는 언급하게 되지 않을 말을 메리로부터 들었다. “여자에게 더 나쁜 일은 뭘까?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 아니면 동성애자와 결혼하는 것?””(1970년의 일기 중)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불안과 동시대 작가들을 향한 질투와 존경의 교차하는 감정들. 필립 로스가 존 업다이크의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상심하면서도 업다이크의 가짜 부고에는 통렬한 추도의 일기를 쓰고, 성공과 명성을 갈망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감은 두려워한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 방랑하면서도 언제나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언제나 처절하게 외로웠던 남자.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컨베이어 벨크 앞에선 공장 노동자처럼 매일매일의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존 치버의 모습은 인간 내면의 복잡한 회로를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입증한다.

편지들을 모은 ‘존 치버의 편지’에서는 작가의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면모가 부각된다. 책을 펴낸 아들은 아버지를 “그가 느낀 기쁨과 그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재능”이 탁월했던 사람으로 규정하며 그 쾌활함은 “깊은 비관주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존 치버는 “기만과 모순이 성격의 본질이자 핵심”이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이 자신에게서 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은 기민하고 재치 있고 설득력 있었지만 거짓일 때가 많았다. 나 역시 속아넘어간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심정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절은 뻔뻔한 위선이 아닌 희망의 변장 혹은 표현양식이었는지 모르겠다.”

편지들은 “본인이 이런 일을 대비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실수와 허술함과 정직으로 점철됐다. “이런 일을 대비하려는 생각에 담긴 허영심을 아버지는 역겨워했을 것”이라는 아들의 말처럼 이 작가는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 태도로 “철저히 자기 자신 그대로, 세상에 고귀한 충만함을 선사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존 치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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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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