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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때론 미친 소리도

입력
2016.02.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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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의 단편 ‘유자약전’은 유자라는 한 괴이한 여인의 짧은 인생을 다룬 소설이다. 거기 이런 대목이 있다. 주인공 남자가 유자에게 그림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유자 왈, “30년 후에 일어날 전쟁을 종이 위에 그려서… 그것을 사람들한테 보여서… 전쟁을 못 일어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발표된 건 1960년대 후반. 내가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인 1980년대 후반. 그때나 지금이나 유자의 답변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여운을 남긴다. 모호하고 맥락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 말이 참 설득력 있고 인상 깊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버릇 들어서일까. 평소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을 추궁 당할 때 저런 식으로 뜬금없는 말을 내뱉게 될 때가 있다. 정확하고 똘똘한 말들이 주는 압박이 피로해서인지 모른다. 논리적으로 옳고 핵심을 칼로 베어낸 듯한 말들은 들을 땐 명쾌하지만, 왠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저렇게들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세상은 하나도 똑똑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다는 부조리가 외려 선명해져 환멸이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에서 유자는 모차르트를 듣다가 벼락같이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인류를 구원할 사람은 저 사람뿐이에요!” 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일 수 있다. 그래도 회칼로 반듯하게 포를 뜬 것 같은 말들보다 저런 광기의 일갈이 더 속을 후련하게 할 때가 있다. 잘 미쳐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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