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천 셰프의 제주 음식여행(4)- 서귀포 짬뽕 로드(상)

투박하지만 정겹고 나름의 독특한 맛을 지닌 서귀포식 짬뽕.

“제주도에선 뭘 사먹어야 하나요?” “서귀포의 특별한 음식은 뭔가요?”

서귀포에 이사 오면서 많이 듣게 되는 질문중의 하나가 주변 맛집에 대한 것이다. 처음에는 주위 분들의 추천 등을 토대로 가성비 좋은 몇 군데 식당을 소개해 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인터넷에 소개된 소위 유명하다는 맛집과 토박이들이 선호하는 맛집들은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보목리가 고향인 호텔의 부주방장의 추천을 받아 지인들에게 몇 군데 식당을 알려준 적이 있다. 나중에 지인들이 고마워한다며 그 식당들도 이젠 제주의 맛집 대열에 들어선 것 같다고 전해주자 부주방장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 식당도 관광객이 많이 늘었어요? 그럼 이제 다른 식당 알아 봐야겠네요. 방송이다 인터넷이다 이런 매체들 때문에 갈 곳이 없어요.”

요즈음 몇 년간 제주도의 식당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지다 보니 동네 웬만한 식당들은 맛집으로 다 소개된 것 같다. 토박이들은 제주의 맛집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경계한다. 자신들만 알고 찾던 호젓한 분위기와 문화가 사라지는 데다, 관광객들 입맛에 맞춰 그 식당의 고유한 맛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서귀포식 짬뽕이다. 서귀포식 짬뽕이라고 정해진 말은 없지만 허름한 식당들이 내어주는 짬뽕 한 그릇에는 서귀포만의 특별한 생활방식과 정겨움 그리고 맛이 녹아있다. 외지인들 보다는 서귀포 주민들의 입맛과 문화에 맞춰진 식당들이 내놓는 짬뽕이다. 내겐 제발 유명세를 덜 탔으면, 행여 많이 알려지더라도 그 맛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울 푸드다.

퇴근길에 남원읍 공천포에서 빠져 자주 가는 S식당이 있다.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으로 얼핏 보기에는 시골 백반집 같은 분위기인데 문 앞의 메뉴엔 짜장면과 짬뽕이 적혀있다. 다른 메뉴론 잡채밥 정도가 가능하고 유일한 중식요리인 탕수육은 점심 시간에는 주문을 할 수 없다. 뜻밖의 메뉴를 보고 처음 찾아 들어간 식당이다. 더 특이했던 점은 중식 화덕에서 무거운 중식 팬을 돌리며 음식을 만드는 분은 중년의 이모님이고 홀에서의 서빙은 호리호리한 남편 분 몫이다. 이 집의 짬뽕은 돼지고기와 해물을 풍성히 넣고 고운 고춧가루와 후추를 듬뿍 곁들여 특이하게 진한 맛이 난다. 업장에서 만나는 음식이라기 보다 집에서 엄마들이 정성 들여 만들어낸 음식 같은 느낌이랄까. 소박하면서 정겨웠다. 아저씨가 가끔씩 바쁜 시간에도 홀에서 손님들에게 소주 한잔을 얻어 드시다 이모님께 많이 야단도 맞으시지만 그런 모습 마저 나름 정겹다.

멀지 않은 거리의 효돈에 있는 이모님 두 분이 일하시는 Y식당도 비슷한 운영 방식인데 메뉴에는 정식이 추가되어 있다. 물론 중식이 아닌 한식 정식인데 짬뽕을 먹으러 가면 다른 테이블에선 생선조림에 국과 몇 가지 밑반찬을 더해 식사를 하시는 감귤 농장 일꾼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 단골이신지 이모님이 항상 반갑게 맞아주셔서 건설현장 식당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곤 한다.

효돈의 또 다른 짬뽕집으로 더 이름 난 곳은 아서원으로 인파가 몰리며 이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후추와 건고추 플레이크를 듬뿍 넣어 내놓는다.

보목에는 한치짬뽕을 파는 W식당이 있다. 서귀포에서는 오징어보다 부드러운 식감의 한치가 인기가 있지만 가격이 세배가 넘어 짬뽕 같은 서민적 음식에는 보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에선 같은 가격에 한치를 푸짐하게 넣어 내놓으니 점심에는 마을 손님들로 꽤나 북적거린다. 젊은 주방장의 보조는 어머니, 홀에선 아내가 일을 해서 인건비는 조금 줄일 수 있겠지만 수고에 비해 대가는 조금 야속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방장은 주문이 끊어 지면 홀에 나와 열심히 테이블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한다.

매우 성실한 친구구나 생각했다. 하루는 짬뽕을 다 먹고 일어나려는데 그가 고민거리가 있다며 소매를 붙들었다. 쉬는 날 제주 시내에 나가 짬뽕을 사먹었는데 불 맛이 너무 좋아서 돌아와 계속 연습을 해보고 있는데 잘 안 된다는 얘기였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 같아 며칠 뒤 회사의 중식 주방장과 같이 방문해 짬뽕을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 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야채나 고기를 제대로 볶지 않아 불 맛을 내기가 어려웠다. 워낙 재료가 좋아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조미를 절제하고 불 맛을 줄인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전에 제주 시내 배달 전문의 중식당에서 요리를 배웠다고 했다. 재료를 볶아 맛을 내기 보다는 시간에 쫓겨 중요한 조리 과정을 빼먹고 음식을 만들어온 거였다. 불 맛을 내는 방법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자 30분 여 거듭 궁금했던 것을 물어왔다. 결국 홀에서 일하는 아내가 주문한 손님이 너무 기다린다고 재촉해 나머지 부분은 나중에 일러주기로 했다. 열정에 비해 조리 학습 환경이 좋지 못해 발전이 더딘 것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좋지 못한 방식으로 저 정도의 맛을 내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며 꼭 한마디는 해주었다. 굳이 오늘 배운 방법으로 요리할 필요는 없으며, 지금의 맛이 좋아 찾아오는 손님이 많으니 개선은 하되 본인 스타일의 짬뽕을 만들어 보라고.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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