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조직 실리 앞세워 각개약진
反노동성향 총선 후보 지지까지
파업 피로감ㆍ강온건파 갈등 속
정부의 분할지배 전략도 원인
“비정규직ㆍ시민사회와 연대 회복해야”
#1. 지난달 7일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가 소속 지부인 IBK투자증권 노조를 제명했다. 민주노총 지침을 어기고 사측의 저성과자 해고 규정 도입에 사실상 동의해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대가로 노조는 임금 향상과 복리 증진 등 요구를 관철했다.
#2. 올해 보건복지부는 15년 간 건강보험 정책 심의ㆍ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가입자 대표로 참여해온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대신 산별 노조인 전국의료산업노조연맹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를 넣었다. 노총 지도부는 정부가 정치적으로 축출했다고 의심하지만 두 산별 노조는 실리만 찾으면 된다는 태도다.
지리멸렬한 노동계
노동운동의 구심점인 양대 노총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업종별ㆍ사업장별 경제적 실리를 앞세우는 산별ㆍ단위 노조들의 각개약진은 정치 노선이나 명분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총연맹에겐 곤혹스런 일이다. 막 시동을 건 동투(冬鬪)도 강한 원심력에 제동이 걸렸다.
11일 노동계에 따르면 양대 노총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 관련 입법과 정부 행정지침(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행에 맞서 싸우겠다는 반(反)정권 강경 투쟁 기치를 세웠지만 일부 산하 조직의 일탈과 반발로 동력을 결집하는 데 실패한 모양새다.
민주노총의 구심력 약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달 27일 산하 한국공항공사노조 간부들이 자사 사장을 지낸 새누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사무소를 지지 방문한 사실도 그 중 하나다. 반(反)노동 성향 인물인 김 후보는 7년 전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총파업이 10여일 만에 사실상 종료된 데는 저조한 참여가 결정적이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등 주력 조직들이 총연맹 주도 파업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다.
한국노총의 분열상은 한층 심각하다. 지난달 29일 총연맹이 주최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한국운수물류노조총연합회 주축이자 온건파인 한국자동차노조연맹이 불참했는데, ‘노동개혁 반대’라는 명분에 매달린 강경 지도부가 운수ㆍ물류 부문 비정규직 사용 제한 입법을 무산시켰단 불만에서였다.
정권의 ‘분할지배’ 효과 있었나
파업 피로감(민주노총)과 강온파 갈등(한국노총)이 총연맹 균열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강경파는 배제ㆍ탄압하고 온건파는 포섭ㆍ관리하는 현 정권의 ‘분할지배 전략’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전략이 먹힌 결과 민주노총은 위축되고 한국노총은 순치됐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주인 민주노총은 이미 1997년 이후 심화한 고용 불안, 시민사회의 냉대를 이기지 못하고 미조직ㆍ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나 투쟁 동력을 크게 잃었다. 민주노총의 ‘전투성’이 정규직 노조의 이익 추구 도구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두 노총은 정치 노선도 다르다. 민주노총이 95년 결성 때부터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추구해온 반면, 한국노총은 정부 후원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등 타협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노선이었다.
“비정규직, 시민사회와 연대 필요”
노총이 보다 폭넓게 연대를 추구하지 않으면 존재기반은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직력을 갖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겐 일반해고가 당장 큰 위협이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와 동반해야 한다는 걸 지도부가 구성원들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와의 연대도 긴요하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사회가 지지하는 공공성 문제에 노조가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개혁에 대한 비판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매월 1인당 조합비에서 가져가는 몫은 각각 1,200원, 550원 정도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연맹이 산하 단체와 정부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재정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며 “해외처럼 규제를 전제로 총연맹에 정치자금을 허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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