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계를 달구고 있는 품목은 라운지웨어다. 패션 제조업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라운지웨어 상품군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관련 브랜드도 증가세다. 원마일웨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말 그대로 반경 1마일(1.6㎞) 이내는 어디든 입고 돌아다녀도 무방한 옷차림새다.
서구 유럽에서 라운지웨어가 인기를 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오늘은 라운지웨어의 대표종목인 파자마와 가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파자마는 힌두어 ‘Pas jama’에서 왔다. 다리를 덮어주는 옷이란 뜻이다. 원래 파자마는 허리를 끈으로 묶는 느슨한 바지, 혹은 속옷을 일컬었다. 여성과 남성 모두 착용 가능하며 주로 인도와 이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즐겨 입었다. 유럽인들에게 이 파자마가 알려진 것은 17세기다. 유럽의 소수 귀족들이 이국적인 페이즐리 무늬가 새겨진 긴 가운과 파자마를 착용했다. 워낙 고가여서 사회적 지위와 식민 활동을 통해 익힌 세상의 지식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18세기 전반, 로코코 시대를 기점으로 라운지웨어는 궁정을 중심으로 태어난다. 17세기 바로크와 달리 로코코 시대의 취향을 결정하고, 생활형식을 디자인한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다. 그들은 웅장하기만 할 뿐, 불편하기 그지없는 바로크 시대의 궁정 대신 집안 내부를 따스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설계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비로소 소파를 비롯하여, 편지를 쓰기 위한 테이블, 다양한 형태의 수납장도 등장한다. 특히 소파는 안락함의 상징이었다. 사소한 발명품 같던 소파는 사람들의 태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사람들에게 캐주얼(casual)이란 감성의 체계를 심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당시 새롭게 개발된 가구에 맞추어 의상도 개발한다. 이때 여인들은 색 가운(Sack gown)을 입었다. 색 가운은 루이 14세 사후 지엄하기 그지없던 궁정 에티켓이 완화되면서 공식적 성격이 약화된 헐렁한 맞음새의 가운이었다. 이 색 가운이 라운지웨어의 전조다. 특히 옷의 뒤판에 활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주름을 넣었는데 당대 프랑스 최고의 화가였던 앙트완 바토(Watteau)가 여인들의 초상화마다 이 주름을 부각해 그려서 바토 플리츠라고도 불렀다. 당시 남자들도 벤얀(Banyan)이라는 나이트가운의 일종인 헐렁한 실내복을 입었다. 이 실내복은 18세기 남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가족과 있을 때뿐만 아니라 손님을 맞이할 때에도 착용되었다.
남자들의 파자마가 대중화가 된 것은 1890년부터다. 영국 식민지 관리자들이 현지의 헐렁한 파마자를 자신들의 나이트셔츠 대신 입으면서 자연스레 교체가 이뤄졌다. 잠을 잘 때 입는 슬립웨어로 각광을 받게 된다. 1902년 당시 시어즈 러벅 백화점의 제품 카탈로그를 보면 파자마를 ‘여행을 위한 최고의 옷, 세상 그 어떤 나이트가운보다도 활동하기에 좋은’ 이라는 광고카피가 적혀있다. 기존의 파자마가 가지고 있던 이국적인 무늬나 느낌을 조금씩 지워가면서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면과 플란넬을 이용하면서 대중의 저변을 넓혔다. 이때부터 파자마는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가장 적절한 현대적인 옷으로 인식되었다.
철저하게 남성용 품목으로 인식되던 파자마를 여성도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변모하게 된 데는 디자이너 샤넬의 역할이 컸다. 1920년대 샤넬은 파자마를 여성용 품목으로 확장시켰다. 그녀는 화려하고 밝은 색의 실크와 면을 소재로 부유층 고객을 위한 최고급 해변용 파자마를 만들었다. 이 해변용 파자마는 휴일에는 바닷가에서, 평일에는 실내에서 집밖으로 간단하게 쇼핑을 하러 나가거나 할 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었는데 앞에서 언급한 원마일웨어의 효시인 셈이다. 파자마가 여성들에게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건 영화의 덕이 크다. 처음에는 많은 여성들이 남성의 잠자리용 의상을 입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1934년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코미디 작품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당대 인기스타였던 클로뎃 콜베르가 남성용 파자마를 입고 등장했다. 상대역은 클라크 게이블. 영화의 흥행은 곧 패션품목의 인기로 연결되었다. 마들렌 디트리히와 그레타 가르보와 같은 당대 배우들이 그 뒤를 이어 영화 속에서 파자마를 입었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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