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에 한강을 지나는 모두가 우연히 보고라도 따뜻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부여잡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12일부터 3월 2일까지 서울 한강 세빛섬에 나비를 닮은 황금빛 조형물이 등장해 날갯짓을 한다. 김홍년(57) 작가가 선보이는 ‘날다 날다 날다 201603-Diary’라는 제목의 대형 설치 작품이다. 가로 24m, 세로 21m, 높이 15m의 조형물은 심해에서 쓰는 낚시용 그물망으로 제작했다. 김 작가는 이 외부 설치작품을 비롯해 실내 전시실에 30여 점의 입체 및 평면 작품을 내건 ‘날다 날다 날다’전을 연다. 세빛섬 내 세 섬 중 솔빛섬 전시관 개관(2014년) 이후 첫 순수미술 전시이자 김 작가의 13년 만의 개인전이다.
김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한국일보와 만나 “혼돈, 카오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분들이 고뇌하며 고독과 절망을 느끼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 않냐”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한 줌 희망을 부여잡고 모두가 더불어, 서로 인정하며, 발전적이고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희망을 상징하는 ‘날개’를 형상화했다”고 말했다.
부산대, 홍익대 대학원을 거쳐 미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설치미술을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설치미술 그룹 ‘난지도’에서 활동했다. 2003년 개인전 이후로는 공공미술, 대지미술 등에 주로 관심 가졌고 2007년 서울 청계광장 ‘희망과 사랑’ 조형물 전시, 2008년 서울도심 주민 참여형 인간띠 퍼포먼스 등을 선보였다. 유학시절 대지미술의 거장 크리스토프 자바체프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영향도 있다. 그는 “예술은 표현의 좋은 수단이기에 아름다운 재현을 넘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먼저 세빛섬 측에 전시 의사를 타진해 성사됐다. “세빛섬에 전시관이 생긴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어요. 미국 전시에서 일부 소장가들이 작품을 소장해주셨는데 이후 실험작품들을 주로 하다 보니 똑 부러지게 개인전이라 할만한 계기가 없었죠. 그런데 이 섬을 보고 꼭 설치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안했죠.”
세빛섬의 두 건물 사이에 로프로 작품을 고정시켜, 조형물을 거치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날다 날다 날다 201603-Diary’는 바람이 불면 날갯짓을 하듯 하늘거리게 제작했다. 천이나 종이 대신 그물코가 지름 4㎝ 가량인 심해용 그물망을 재료로 택한 것도 이 효과를 위해서다. 김 작가는 “마치 하늘로 비상할 듯이 흔들리는 작품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에 날개를 달았으면 한다”며 “관객의 잠재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정교한 나비 모양 대신 어렴풋한 날개 형상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워낙 대형 작품이라 소재와 설치법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한강 바람이 거세 안전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았고요. 처음엔 신문지로, 또 울타리망으로 시도했다가 그물망을 찾았죠. 파도와 태풍, 무거운 어획량을 견디는 재료잖아요. 확신이 왔죠.”
세빛섬 내의 1, 2층 실내 전시관에서는 빛, 나비와 꽃, 신체를 주제로 구성한 세 정원에서 설치, 회화, 오브제 등이 선보인다. 관객과 소통을 위해 매번 1,000명째, 1만명째 관객에게는 ‘날개’ 시리즈 판화 및 원화를 선물한다. 외부 설치조형물 사진 중 우수작은 전시관에 내걸 계획이다.
“황금숭배사상, 황금만능주의로 금빛이 화려한 물질을 대변하는 색으로만 인식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금빛은 실은 우아함, 세련미를 지닌 환희의 색이에요. 한강을 지나는 시민들이 어? 저건 뭐지? 하고 궁금해하거나 작품의 황금빛, 붉은빛을 보고 어렴풋이 스미는 희망, 열정을 느끼기만 해도 전시는 성공 아니겠어요.”(웃음)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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