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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겨울 밤바다

입력
2016.02.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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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해안에 갔다. 뭔가 크고 힘센 존재가 그리워서였다. 도착하니 늦은 오후. 금세 해가 지고 물빛이 검어졌다. 사위는 고요했으나 바다는 시끄러웠다. 인공의 소리가 죽고 바다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겨울 밤. 서너 시간 차를 타고 세계의 끝에 닿은 것 같았다. 수평의 경계가 어둡게 지워진 밤바다는 거대한 원심의 소용돌이였다. 그 안에서 나는 한없이 작았고, 이 작은 몸 안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은 발 딛고 서 있는 백사장 모래 한 알과도 같았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겉으론 요동치나 속으론 거대한 침묵 속에 온갖 생물들을 키우고 있을 심해의 모습을 상상했다. 차마 다 안다고 확신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 같았다. 추위에 못 이겨 숙소로 돌아왔다. 창 밖을 봤다. 불과 몇 분 사이 네모난 프레임 안에 갇혀 혼자 용쓰는 바다. 바다를 보러 와서 바다를 피하다니. 어떤 하소연을 팽개치는 비열한이 된 것 같았다. 종이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선 하나 그을 수 없었다. 다 안다고 떠벌리는 순간, 금세 오류로 판명되는 내 마음 같아서였다. 깊이 살펴봐야 가닥이 잡히는 걸 이미 봤다고 여겨 돌아섰던 어떤 속단들을 후회했다. 잠을 청했다. 파도 소리가 투명했다. 저 소릴 어떻게 말로 번역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 긴 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정오. 바다가 파랬다. 간밤 새까맣게 울었던 건 바다가 아닌 내 마음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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