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임원에 해시계 보여 주기까지
부품 비용 절감해 고급 사양 장착
자동차 27년 만들며 최고의 경험”
“한국 업체는 이렇게 잘 만드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왜 못 만들었나요? 다이얼을 돌릴 때 헐겁거나 뻑뻑하지 않은 이런 느낌이 살아야 고급 제품이죠. 분발합시다.”
2년 전 중형 세단 ‘탈리스만’ 시제품이 프랑스 북부 두에의 르노 공장에서 공개됐을 때 로렌스 반덴애커 르노 디자인 담당 부회장은 계기판 옆 송풍구 부품이 한국산이라는 설명을 듣고 놀라서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르노 전체 임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탈리스만’은 ‘SM6’의 수출명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부산 공장과 르노 두에 공장에서 만들어 세계로 판매하는 탈리스만은 재료비 기준으로 70%가 한국산이다. ‘탈리스만’이 팔리는 만큼 우리 업체의 수출실적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처럼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 르노가 한국산 부품을 대거 채택한 배경에 ‘SM6’ 연구개발 총책임자인 권기갑 르노삼성 이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10일 경기 기흥의 르노삼성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탈리스만 개발 비화를 들었다.
2012년 르노가 탈리스만을 개발할 때 국산 부품의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르노는 연구개발 주도권을 세단 개발 경험이 있는 르노삼성에 넘겼다. 이때 권 이사는 국내 업체가 만든 부품들의 시험성적서와 가격표를 르노 본사에 보내 국산 부품의 우수성을 알렸다.
하지만 르노는 여전히 못미더워했다. 유럽연합(EU) 내 우수한 부품업체들이 많아 구태여 수천㎞ 떨어진 한국에서 부품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 그때 권 이사는 “기초과학은 프랑스가 앞서지만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응용력은 한국이 한발 앞서 있다”며 “장영실을 아느냐”고 본사 임원을 설득했다.”
권 이사는 본사 임원을 경기 여주 세종대왕릉 박물관에 데려가 해시계, 물시계 등을 보여줬다. 그는 “우리 선조들은 600년 전에 시계를 보고 식사 시간과 일할 시간을 알았다고 설명했더니 본사 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이후 권 이사는 매년 프랑스 르노 본사에서 열리는 ‘테크 데이’에 국산 부품업체들을 꾸준히 소개해 인지도를 올렸다.
권 이사는 탈리스만에 값싸고 좋은 한국산 부품을 대거 채택하면서 고급 중형차로 개발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국산 부품을 사용해 절감한 비용으로 마사지 시트, 운전자 취향에 맞춰 가속력ㆍ승차감ㆍ실내조명 색상까지 한 번에 바꿔주는 멀티센스 등 고급 사양을 대거 장착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좋은 중형 세단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원 없이 개발했다”며 “27년간 자동차를 만들면서 최고의 경험을 했다”고 강조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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