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버몬트)상원의원이 압승을 거두면서 2016년 미 대선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혼전 구도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당초 알려진 슈퍼화요일(3월1일)을 훨씬 지난 시점까지 선두 주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형식적인 대관식 행사에 머물던 7월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가 가려지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60대40의 압도적 격차로 샌더스 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누르면서 민주당 경선 구도는 자칫 다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클린턴 진영은 샌더스 후보의 고향과 가까운 뉴햄프셔 주의 패배는 예견됐던 것이며,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과 흑인 비율이 많은 다른 지역에서는 낙승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고액 강연, 이메일 의혹 등의 스캔들이 확산될 경우 이달 20일과 27일 치러지는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승리도 낙관할 수 없다. 만약 이 곳에서도 샌더스 의원에게 패배한다면 본선 경쟁력은 물론이고 당장 민주당 경선 통과마저 불투명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민주당 주류 내부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나 존 케리 국무장관 ‘대타설’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중도 성향으로 민주당 지지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제3당 혹은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경우 클린턴 전 장관의 입지는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워싱턴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몰고 온 공화당 내분을 즐기던 클린턴 진영은 이제 내부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본선에 투입할 계획이던 조직과 자금까지 쏟아 부어야 할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대부분 전문가와 예측시장에서는 뉴햄프셔에서의 승리에도 불구, 샌더스의 패배 가능성을 훨씬 높게 보고 있다.
공화당의 속사정도 복잡해졌다. 아이오와에서 체면을 구겼던 트럼프가 재기에 성공하면서 ‘트럼프 대세론’이 또다시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의 공화당 내부 경선 승리 가능성은 전날까지만 해도 5대1 가량으로 평가됐으나, 압도적 승리가 확인된 9일 저녁에는 2.6대1까지 높아졌다.
아이오와 주 코커스에서 3위를 차지한 뒤 공화당 주류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5위에 머문 것도 혼전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6일 공화당 TV토론 전까지만 해도 루비오 의원은 젭 부시, 존 케이식, 크리스 크리스티 등 공화당 주류에 뿌리를 둔 다른 후보들을 거뜬히 제압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에게마저 역전을 허용하며 5위로 추락하면서, 트럼프에 맞설 공화당 주류 진영의 후보 조기단일화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공화당 지도부 역시 여전히 트럼프의 본선 경쟁력에 의문을 품고 있다. 따라서 히스패닉 유권자나 보수 성향 유권자 비율이 많은 다른 주에서 후보간 혼전이 이어져 트럼프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중재 전당대회’로 대선 후보를 옹립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언론은 “뉴햄프셔 직후 치러지는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맨체스터(뉴햄프셔)=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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