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Live Free or Die).’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 주의 모든 자동차 표지판에 새겨진 문구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부도덕한 정권과 정치집단에 대한 저항정신을 유산으로 계승한 유권자들답게 주민들은 9일 일제히 투표장으로 뛰어 나와 미국 정치를 심판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공화당 지지자들은 막말을 내뱉지만 자신들의 속내를 대변하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지면서 공화ㆍ민주당의 패거리 정치와 확대되는 빈부격차, 불법이민자 유입으로 각박해지는 서민의 삶에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존 정치권에 경고장을 던진 것이다.
아웃사이더 반란은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감지됐다. 전날 내린 폭설과 추위에도 불구, 직장 출근 전 투표장을 찾은 20~30대 젊은 층이 몰리면서 투표율이 치솟았다. 뉴햄프셔 주립대 캐롤앤라인스 센터에 마련된 맨체스터 제3투표소의 게일 아서스 책임자는 “2008년, 2012년 프라이머리 대비 20% 가량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은 젊은 층일수록 샌더스나 트럼프를 찍었다고 공개했다. 샌더스를 찍기 위해 점심 시간을 빌어 투표장에 왔다는 앰버 레비(26ㆍ여)씨는 “빈부격차가 너무 극심하다”며 “샌더스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여성 대통령을 강조하지만, 더 중요한 건 기득권 계층과 얽히지 않고 우리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후보”라고 덧붙였다. 남편과 함께 맨체스터 4투표소(맥도너프 초등학교)에 나온 바바라 펠레테스(64ㆍ여)씨도 “허리를 다쳐 몸이 좀 불편하지만, 샌더스에게 한 표를 던지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보험, 빈부격차 등으로 서민 삶이 갈수록 어려운데 정치인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며 “정치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60대 이상 계층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샌더스 주장은 급진적이며, 힐러리가 경륜도 있고 능력 있는 후보”라는 비율이 더 많았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트럼프 지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트럼프에 투표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유권자 대부분은 20대 젊은 층이었다. 맨체스터 시내 투표소마다 트럼프 지지를 호소하는 자원봉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친 뒤, 직장도 하루 쉬고 3투표소에서 나타난 청년 두 명은 “당신의 한 표가 미국을 강하게 만든다”며 트럼프 지지를 호소했다.
평소 공화당 지지성향이 아닌 백인 가운데서도 트럼프 지지자가 많았다. 신시아 웨이드(68ㆍ여)씨는 “멕시코 국경을 통해 유입된 마약과 이민자가 뉴햄프셔까지 망치고 있다”며 “트럼프 정책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또 함께 데리고 온 초등학생 손녀를 가리키며 “자식과 손녀 세대로 내려갈수록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트럼프 같은 지도자가 나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맨체스터(뉴햄프셔)=조철환기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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