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부는 한류 바람이 올해도 심상치 않다. 시즌 개막전에서 김효주(21ㆍ롯데)가 우승했고 두 번째 대회에선 장하나(24ㆍBC카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2전 2승이다.
지난해 LPGA에서 한국 선수들은 2006년과 2009년 각각 세웠던 11승을 훌쩍 넘는 15승을 합작했다. 올해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총 34개 대회 중 절반인 17승 이상을 휩쓸 태세다. 원동력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위한 동기부여가 엄청나다. 골프는 리우 올림픽을 통해 112년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했다. 둘째로는 갈수록 두터워지는 선수층이 내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은 곧 국민적 스포츠 스타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골프 팬들을 넘어 온 국민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단숨에 어필하는 데 더 좋을 수 없을 기회다. 그런 측면에서 나란히 올림픽 출전에 사활을 걸고 시즌에 임한 김효주와 장하나의 연속 우승은 시사점이 크다.
김효주는 개막전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세계랭킹을 10위에서 7위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강행군이 극심한 체력 소모를 불러온다는 걸 절감한 그는 올해 상반기 사실상 국내 대회 불참을 선언하는 강력한 의지 속에 곧장 성과를 냈다. 적어도 올림픽까지는 LPGA 투어에만 전념하겠다는 김효주는 목표를 ‘올림픽 이전 3승’으로 상향조정하며 시즌 내내 돌풍의 주역이 될 것임을 알렸다.
시즌 2번째 대회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서 투어 첫 승을 맛본 장하나도 동기부여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는 우승 후 귀국길에서 “느낌이 좋다”며 “여세를 몰아 올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다”고 공언했다.
‘와이어 투 와이어’(1라운드부터 선두를 빼앗기지 않은 채 우승)우승으로 기세가 한껏 오른 장하나는 LPGA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세계랭킹이 14위에서 9위로 상승했다. 장하나는 최근 상승세의 비결에 대해 쇼트게임에 자신감이 생기니 롱게임도 편해졌다고 설명했다. 내친 김에 오는 7월11일(올림픽 출전 최종 명단 확정일)까지 1승 이상을 더 추가하겠다는 각오다.
김효주ㆍ장하나의 우승은 일종의 기폭제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최대 4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혼전양상을 벌이고 있는 김세영(23ㆍ미래에셋)과 유소연(26ㆍ하나금융그룹) 전인지(22ㆍ하이트진로) 양희영(27ㆍPNS) 이보미(28ㆍ마스터즈GC) 최나연(29ㆍSK텔레콤) 등의 경기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LPGA의 거센 한류바람을 이끄는 또 하나의 힘은 내부 경쟁력 강화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살짝 비껴나 있지만 우승권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숨은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개막전 챔피언 김효주 뒤로 공동 2위 김세영, 공동 5위 이일희(28ㆍ볼빅), 공동 8위 곽민서(25ㆍJDX)가 ‘톱10’에 포진했다. 이일희와 곽민서는 11위였던 장하나보다 앞섰다.
코츠 챔피언십 역시 전통의 강자들을 제치고 공동 3위 전인지ㆍ김세영에 2년차 중고신인 양자령(21ㆍSG골프)이 공동 6위에 올랐다. 지난해 허리 부상 등으로 최하위권을 면치 못한 양자령은 마지막 날 퍼팅 수 23개를 기록하며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저력을 발휘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태극낭자들의 지난해 15승 합작엔 양희영과 김효주 전인지 최운정(26ㆍ볼빅) 안선주(29ㆍ요넥스코리아)가 각각 보탠 1승이 큰 역할을 했다. 올해는 2년차 김세영과 김효주가 한층 성숙했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상금왕 전인지가 본격 데뷔했으며 일본 상금왕 이보미(28)도 LPGA 무대에 자주 나설 계획이다. 여기에 무명의 강자들마저 한데 어우러졌다. 언제 누가 우승할지 모르는 한국여자골프의 경쟁력이 넓고 두텁기 그지없다.
정재호기자 kem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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