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좋은데 꼭 저렇게 입고 해야 돼?”
LGBT(레즈비언ㆍ게이ㆍ바이섹슈얼ㆍ트랜스젠더의 앞머리를 딴 말로 성소수자를 통칭) 축제가 열리고 난 뒤 반드시 나오는 말이다. 성소수자에 관대하다고 자처하는 이들도 이런 축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가죽 끈 팬티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 한다.
퀴어 퍼레이드의 자극적인 코스튬은 한 많은 동성애 역사에서 비롯됐다. 미국에서 동성애 운동이 처음 시작된 1970년대만 해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식은 바닥이었고, 동성애 진영에선 여과 없이 쏟아진 혐오와 차별의 시선에 ‘그래, 내가 바로 변태다’는 어깃장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추세였다. 지난해 6월 미국 대법원이 동성혼을 전면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린 뒤 시카고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엔 ‘성다수자’들을 난감하게 하는 의상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미국을 필두로 전세계 동성애 운동의 기조는 “우리도 당신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로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은, 동성애 운동의 시류에 올라타지 못한 한국 LGBT 진영의 현재를 제3자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섯 빛깔 무지개’(워크룸프레스)는 커밍아웃한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임근준씨가 2014년 진행한 동명의 팟캐스트 녹취록이다. 게이 영화감독 김조광수, 트랜스젠더 차세빈씨 등 미디어에 자주 노출된 성소수자 외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 드래그 퀸, 게이바 사장 등 우리 사회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경직되고 방어적이던 윗세대와 달리 이들은 레즈비언 세계에서 어떤 아이돌이 가장 인기가 많은지, 게이의 걸음걸이가 이성애자 남성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거리낌없이 수다를 떤다.

20대 중후반의 레즈비언 커플에 따르면 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길거리에서 뽀뽀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대부분의 레즈비언이 정체를 감추는 상황이라 오히려 상당수 커플이 친구로 오인 받는다고 한다) 생활고다.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이 62%인 한국 사회에서 게이 커플의 수입이 200이라면 레즈비언 커플의 수입은 124. 사회적 차별 이전에 경제적 차별, 즉 빈곤층으로서 이들이 견뎌내야 하는 삶은 여성 인권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여섯’은 게이 여섯 명과 그들이 커밍아웃한 이성애자 여섯 명이 짝을 이뤄 진행한 프로젝트를 담았다. 이태원에서 LGBT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철희씨는 랜덤채팅 프로그램에 접속해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뒤 상대방의 반응을 기록했다. “도라이”라며 욕을 퍼붓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적인 남자로 살고 싶으면 호르몬제를 투여하라”는 조언으로 시작해 자신이 멘사 코리아 회원이라는 말을 끝으로 퇴장하는 이성애자 남성까지,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은 이 나라에서 성소수자로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새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가까이에, 우리와 같이 평범한 모습 그대로” 그들이 존재해왔던 것은 아닌지.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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