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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아들이 엘사 옷 입는 게 심란하나요?

입력
2016.02.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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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핼러윈 코스튬으로 엘사 드레스를 고른 아들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유명해진 아빠 폴 헨슨과 그의 아들. 그는 “아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폴 헨슨 페이스북
지난해 핼러윈 코스튬으로 엘사 드레스를 고른 아들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유명해진 아빠 폴 헨슨과 그의 아들. 그는 “아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폴 헨슨 페이스북

“여자애들이 터닝메카드 가지고 노는 건 ‘보이쉬’하다며 이상하게 안 본다. 그런데 우리 아들 엘사 엄청 좋아하는데, 왜 남자애가 엘사 좋아하냐고 하도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티를 못 낸다. 불쌍해 죽겠다.”

성별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된 장난감이 아동의 발달과 성장에 끼치는 악영향을 다룬 기사 ‘”여자아이도 터닝메카드 좋아하거든요”…장난감의 성 정치학’(한국일보 2월 5일자)이 나간 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다양한 의견과 고민들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씩 생각해봤을 문제이기 때문이겠죠. 640개가 넘는 네이버 댓글은 다양한 견해의 스펙트럼을 보였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고민은 여아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들을 둔 부모들의 것이었습니다. “여자애가 파워레인저 가면을 쓰면 주변에서 활달하다고 하지만, 남자애가 엘사 공주 드레스를 입으면 이상하게 쳐다본다.” “어떤 엄마가 집에 오더니 아들인데 왜 딸 장난감이 있냐고 해서 놀랐다. 콩순이 냉장고와 주방놀이…, 분홍색 들어가면 여자용이라고 단정짓는 놀라운 사고방식.” 남아용 장난감을 좋아하는 여아에 대한 시선은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데 반해, 여아용 장난감을 좋아하는 남아는 훨씬 더 문제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토로였습니다.

그 이유는 남성을 인간의 디폴트값으로 놓고 여성은 그에 미달하는 제2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해석입니다. 기사에 썼듯이 여성혐오 때문이지요. 한 댓글은 “여자의 것은 남자의 것보다 낮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여자가 파란색, 로봇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남자가 분홍색,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게 이상한 것처럼 비춰지는 겁니다. 남성들은 차별 받고 있다고만 생각하지, 그게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모르죠?”라고 지적했습니다. 가디언의 ‘젠더화된 장난감에 대한 반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남아들은 장난감과 의복에서 젠더의 경계를 뛰어넘으면 더 큰 낙인이 찍히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여성혐오와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에서 비롯되었을 팩트”라는 겁니다. “약함과 종속의 동의어로 여겨지는 여성성을 남아가 받아들인 것에 대한 의구심”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여아 장난감을 갖고 논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거나 놀림을 받는 아이들, 이를 견디다 못해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들에 대한 외신기사를 유심히 보면 대부분 남아들인 게 사실이지요.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든, 부모의 마음 속에서 내 아이가 이성애자의 평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닙니다. 이런 욕망이 아이의 자유로운 선택에 제한을 가하는 근본적 동인인 것도 사실이고요. 실제 댓글 중 상당수는 “그렇게 키웠다가는 나중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게이나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성 정체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므로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므로 개개인의 인격체로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도록 놔둬야 한다”는 반박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그런 시선에서 아이의 방패 역할을 해주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우리 사회는”과 같은 따스한 포용의 견해도 나왔고요. ‘있는 그대로의 자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흔한 명제의 적용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내 아이가 이성애자였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과 “내 아이는 반드시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고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장난감이라는 작은 렌즈를 통해 나는 어디까지 내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자아이의 마음 속에도 빌딩을 거슬러 올라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스파이더맨 피규어.
여자아이의 마음 속에도 빌딩을 거슬러 올라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스파이더맨 피규어.

아무리 양성평등을 주장해도 남녀 사이에는 태생적이고 본래적인 성차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공고한지도 댓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아는 색채를 인지하면서부터 파랑에 끌리고 여아는 분홍에 반응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학술적으로 이미 오류임이 판명된 주장입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의 조 파올레티 교수의 책 ‘블루 앤드 핑크’에 따르면, 1900년대 전반기에 핑크와 블루의 구분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매우 느슨했고, 현재와 같이 이분법적이고 결정론적으로 분리된 두 세계는 1990년대 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핑크와 블루는 완구 시장을 지배하는 두 가지 색깔이 아니었고, 1920년대와 30년대의 종이인형 패턴을 분석해보면 성별과 관계 없이 푸른 눈의 아이에게 블루를, 갈색 눈의 아이에게 핑크를 입혔을 뿐이랍니다. 색깔을 젠더에 따라 분리한 건 아들과 딸을 모두 낳은 부모들이 이중의 지출을 하게 만든 자본주의의 시장확대 전략이었고요.

동심의 세계를 분홍과 핑크의 두 섹션으로 철저하게 분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초음파 기술입니다. 초음파로 인해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성별을 알 수 있게 되면서 젠더화된 칼라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꽤 그럴 듯한 설명입니다. 초음파로 미리 감별된 뱃속 아이의 성별은 아이의 유일무이한 정보가 됩니다.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대략은 알 수 있지만요), 성격이 어떤지도 전혀 모른 채 오로지 성별밖에 정보를 갖지 못한 부모는 성별만을 근거로 아이의 탄생을 준비하게 됩니다. “오, 딸이래. 핑크 내복과 핑크 신발과 핑크 딸랑이를 사러 가자고!” 이전에는 아들이 나올지, 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젠더중립적인 흰색이나 노랑 같은 컬러를 준비했는데 말이죠.

아이가 다양한 놀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블루와 핑크의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탑토이 주방놀이 세트 카탈로그
아이가 다양한 놀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블루와 핑크의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탑토이 주방놀이 세트 카탈로그

성별 구분된 장난감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억압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해 댓글을 쓰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유아교육 전공 학도인데요. 수많은 연구물의 결과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이 낮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창의성이 더 높다고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역할을 고정하고 제한하기보다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답니다. 즉, 자신의 역량을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는 거죠. 성역할 고정관념 형성엔 주변 환경 영향을 많이 받으니 부모님도 의식이 깨어날 필요가 있죠!”

주변 영향, 특히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인지하고 성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만 3~5세 아동에게 그런데요. ‘이건 남자 거야’, 이건 ‘여자 거야’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의 보존 욕구 때문에 처음의 선택을 자신의 성별에 맞춰 수정한다는 겁니다. 파올레티 교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짧은 머리를 한 여아는 남자로, 드레스를 입은 남자는 여자로 인식한다”며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선택 압력에 매우 취약하다는 겁니다.

설날 세배돈을 받은 아이들과 장난감 매대 앞에서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할 때입니다. 이번 설엔 아이에게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허해보면 어떨까요. 자연스레 아들은 핑크 섹션으로, 딸은 블루 섹션으로 이끌고 가보는 것도 아이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육아에는 천만 가지의 고민이 있고, 해답도 딱히 찾기 어려운 게 부지기수지만, 이 모든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있기는 합니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은 저래야 하나요?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다릅니다. 그렇다면 같은 성은 모두 같아야 하나요? 개개인이 다 다릅니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다른 게 아니라 한 개인이기 때문에 다른 겁니다. 그런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그 사람이 가진 성별로 옳은 게 되고 그른 게 되나요? 성별 이전에 인간이고,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다는데 남자라서 안 된다는 건 학대입니다.” “여자애들이 총 가지고 놀든 남자애들이 인형놀이를 하든, 여자가 축구를 하든 남자가 꽃꽂이를 즐기든 제발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여자고 남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이고, 인격이니까.” 세상에는 훌륭한 댓글들도 참 많습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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