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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접해볼래! 2030 LP에 빠져들다

입력
2016.02.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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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직접 LP 체험에 나선 소담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4)는 “소리가 꽉 찬 느낌”이라며 신기해 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직접 LP 체험에 나선 소담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4)는 “소리가 꽉 찬 느낌”이라며 신기해 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지난 일요일 오후 서울 한남동 한 건물의 지하주차장. DJ 슈퍼플라이 하가 LP 한 장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지지~익… 이젠 버틸 순 없다고~” 가수 김동률이 1990년대 활동한 전람회 1집 ‘엑시비션’에 실린 ‘기억의 습작’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 시절 청춘을 보냈을 이들만이 아니었다. 서정적 음률과 노랫말에 섞여 든 LP 특유의 미세한 잡음이 세월과 세대를 넘나드는 공명을 일으키는 듯했다.

문화공간 디뮤지엄이 지난달 30, 31일 연 ‘LP 음감회’ 풍경이다. 좀 논다는 사람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한남동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행사에는 이틀간 600여명이 몰렸다. 대부분은 20~30대 젊은 관객들. 휴학생 임상기(24)씨는 “‘응답하라 1998’ 등을 보며 아날로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LP로 듣는 음악의 매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 LP(1987)를 사 들고 돌아갔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한남동 문화공간 디뮤지엄 지하주차장. 주말 이틀 동안 열린 ‘LP 음감회’에 600여 명이 참여해 아날로그 소리를 즐겼다. 디뮤지엄 제공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한남동 문화공간 디뮤지엄 지하주차장. 주말 이틀 동안 열린 ‘LP 음감회’에 600여 명이 참여해 아날로그 소리를 즐겼다. 디뮤지엄 제공

LP의 부활…아이돌그룹도 가세

CD에 밀려나 골동품 대접을 받던 LP가 조심스레 부활을 알리고 있다. 5일 교보핫트랙스에 따르면 지난해 LP 판매량은 2013년 대비 14% 늘었다. 전체 음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침체된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성장세다. 더구나 20~30대 소비자가 부쩍 늘었단 점이 고무적이다. 여성만 보면 2014년 LP 구매층의 가장 ‘큰손’이었던 40대(약 32%)가 지난해엔 30대(약 33%)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지난해 국내 최대 LP 매장인 교보핫트랙스의 LP판매 톱5에 아이돌그룹 인피니트 음반 2장이 오르는 ‘이변’도 이런 소비층의 변화 덕이다. 김형순 광화문 교보핫트랙스 과장은 “지난해 LP 발매도 2년 전보다 30%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조용필을 비롯해 밴드 산울림, 김광석, 양희은, 이소라, 김동률 등의 음반이 뒤늦게 LP로 제작되는 사례도 잇따랐다.

정교한 디지털 음원에 익숙한 20~30대를 LP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대중문화에 분 ‘복고 열풍’이다. 1980~90년대 음악을 소환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등의 인기가 그 시절 노래를 담은 LP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이로 인해 중고 LP 시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지난 연말엔 ‘응팔’ 덕에 1988년 ‘MBC 대학가요제’ LP를 찾는 이들이 줄을 서는데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서울 회현동 지하상가에 있는 LP가게 ‘파스텔’의 직원 이모씨는 “얼마 전엔 가수 나얼이 대학가요제 LP를 사러 왔는데 다 팔렸다고 하니 아쉬워하더라”고 귀띔했다. 최근 2~3년 간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과 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 아이유 등의 LP 발매가 이어진 것도 20~30대를 LP시장으로 이끈 요인 중 하나다. LP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연결해 MP3를 재생할 수 있는 10만 원대 휴대용 턴테이블이 보급화된 점도 주효했다.

LP의 부활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음반 판매 집계 회사인 닐슨사운드스캔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LP 판매량은 약 1,200만 장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이 기관이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맥락 있는 음악 향유 가능…잡음 가득한 삶과도 닮아

LP 팬이 는 건 잃어버린 음악의 가치 회복과 맞닿아 있다. 디지털 음원 시대에 접어들며 음악은 일회용품(스트리밍)으로 전락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앨범이 음원으로 쪼개져 유통되다 보니 앨범에 담긴 맥락은 휘발됐다. 이와 달리 LP는 턴테이블에 올려 놓으면 순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해 분절된 음원과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회사원 김기웅(29)씨는 “LP를 듣는 건 CD와 달리 몸으로 음악을 즐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단지 듣는 순간만이 아니라 LP를 닦고 관리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아울러 음악과 일체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원생 박찬(25)씨는 “앨범 재킷이미지도 CD보다 세련되고 LP로 음악을 들으면 뭔가 다른 사람들은 못 누리는 것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소리의 친근함은 LP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지난 3일 회현동 LP가게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LP를 산 이재경(60)씨는 “LP로 음악을 들으면 차가운 느낌의 CD와 달리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CD는 녹음실에서 반사음을 다 빼버리고 악기 소리만 뽑아내 소리는 깨끗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 반대로 LP는 녹음실 안의 악기 울림 등 잡음까지 다 담아 생활 속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는 기분이 들어 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지직~’거리는 LP의 표면 잡음은 보통 사람의 삶과도 닮아 더 몸에 스며든다. 영국 BBC의 유명 DJ 존 필은 “누군가는 CD가 LP처럼 표면 잡음이 없어 훨씬 좋다고 했지만, 우리 삶 자체가 표면 잡음으로 이뤄져 있다”는 말로 LP의 매력을 설명했다.

“LP가 음악시장의 미래”란 기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창작자는 음악적 가치를 살리고, 소비자는 주체적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매체가 LP라는 믿음에서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발굴한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사장은 “이제 CD는 들을 곳이 없고 음원은 너무 싸다. LP가 가수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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