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만에 박근혜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결국 냉정한 대응을 주문하며 사실상 강력한 대북 제재에는 반대했다. 이는 북한의 핵 실험과 위성 발사 예고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익을 위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중국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란 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 3원칙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확고부동하게 힘 쓸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이란 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는 북한이 아무리 도발을 하더라도 중국은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그가 “한반도엔 핵이 있어선 안 되고, 한반도에서는 전쟁이나 난리가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를 빌미로 해 각국이 중국의 대문 앞인 한반도를 전쟁 상황으로 끌고 가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시 주석이 “나는 각방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란 대국에서 출발, 냉정하게 이러한 정세에 대응하고 늘 대화와 협상의 정확한 방향을 견지하길 바란다”고 한 대목에서도 이는 분명하게 확인된다. 미국처럼 B-52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우는 무력 시위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 THAAD) 등의 군사적 협박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 즉 6자 회담 재개 등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중국 입장이다. 이는 미국과 일본을 겨냥, 북핵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경고까지 담고 있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시점도 중국의 국익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이 5일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은 지난달 6일 북한의 4차 핵 실험 후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양국 정상간 통화를 장고 끝에 수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시 주석이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관련, 외국 정상과 통화를 한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이란 점에서 나름 의미를 둘 수도 있다. 북한의 1~3차 핵 실험 당시엔 한중 정상 통화가 없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통화는 북핵 6자회담 중국 수석 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북하고 귀국한 뒤 이뤄진 것이란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 대표는 방북기간 리수용 북한 외무상,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6자회담 북측 수석 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더 이상 위기를 고조시키지 말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 대표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 대표는 지난 4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며 “해야 할 말은 다 했다”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은 북한에 우 대표를 파견, 자제를 촉구한 데 이어 한국에는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통화를 통해 냉정을 주문한 셈이다. 남북한 균형 전략이다. 우리측 요청에 의해서 전화 통화가 이뤄진 게 아니라 중국식 해법의 진행 과정에서 통화가 성사됐다고 보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
이날 전화 통화가 설 인사 형식으로 이뤄진 것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5일 밤 늦게 홈페이지를 통해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전화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양국 정상이 음력 설 인사를 나눴다고 가장 먼저 소개했다. 더구나 관영 신화통신이 관련 기사를 띄운 건 5일 밤 11시45분(한국시간 6일 0시45분)이었다. 가급적 양국 정상의 통화 사실이 크게 부각되는 것을 피하려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일각에선 북한을 자극하기 않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했다.
한달 만에 이뤄진 한중 전화 통화에서 중국 최고지도자가 각국의 냉정을 주문하며 실효성 있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 아니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북한의 1~3차 핵 실험 후 대북 제재안이 상정되는 데 걸린 시간은 1~3주였는데 이번엔 이미 한 달이 지났다”며 “다음주엔 중국이 1주일 간 춘제(春節ㆍ우리의 설) 연휴임을 감안하면 대북 제재안은 일러야 이달 중순이나 가능, 사실상 김 빠진 제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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