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후 비행 저질러 보호시설 수용
아버지 교도소 수감 알고 큰 방황
상담 봉사자 노오섭씨 만나며 변해
"친아빠처럼 저를 위해 눈물 흘리고
내 얘기 다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
설날을 사흘 앞둔 5일 경기 군포시 산본의 한 미용실. 김여주(16ㆍ가명)양이 미용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아빠’ 노오섭(62)씨에게 세배를 올렸다. 대견해하며 노씨가 건넨 봉투 속 세뱃돈을 확인한 여주양은 혀를 날름 내밀며 좋아했다. 설을 앞둔 평범한 부녀로 보이지만 이들은 피를 나눈 아버지와 딸이 아니다.
여주양은 중학교 1학년 때인 2013년 가출해 1년여 간 가출한 다른 친구들과 돈과 물건을 훔치는 등 비행을 저지르다 2014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6개월간 보호시설에 수용됐다.
세 살 때부터 단둘이 살며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아빠는 매달 면회를 오다 2014년 8월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수소문 끝에 새엄마와 사업을 시작했다가 큰 빚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집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새엄마는 목숨을 잃고, 아빠는 목숨을 건졌지만 중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충격에 여주양은 시설을 무단 이탈했다가 2014년 11월 안양소년원에 입원 조치됐다. 여주양은 소년원에서도 문제아였다. 교사들에게 반항하고 다른 입원생들과 싸움을 벌여 근신실에 갇히기도 했다.
자원봉사 상담자인 노씨를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이 곳이었다. 소년원은 지난해 1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노씨를 만나 상담을 받도록 했다. “어른들은 다 똑같다”며 처음에는 심드렁했던 여주양은 자신을 무시하던 어른들과 달리 얘기를 다 들어주는 노씨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다. 여주양은 지난해 여름 자신의 지병이 갑작스레 악화돼 치료보호시설에서 3개월을 보낼 때 자신을 위해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노씨를 보고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여주양은 “저 때문에 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며 “친아빠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여주양은 노씨에게 “내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라며 울먹였다. 이때부터 여주양은 노씨를 ‘아빠’라고 불렀다.
그 뒤 여주양의 행동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행으로 쌓였던 벌점은 상점으로 바뀌었고 소년원 교사들도 그의 편이 돼 주었다. 소년원이 여주양의 가족을 찾아 나선 끝에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가 7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아빠가 수감된 교도소도 확인했다.
아빠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여주양은 완전히 모범생으로 변했다. 교정성적을 잘 받아 소년원을 빨리 나가 아빠를 면회하러 가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3개월 상점 우수학생’으로 선정되는 등 변모한 여주양의 모습에 감동 받은 소년원과 법무부 관계자들은 부녀 상봉을 주선해 결국 지난달 28일 여주양은 그토록 보고 싶던 아빠도 다시 만났다.
여주양은 “이제 꿈이 생겼다”고 했다. 소년원을 퇴원한 후 미용고에 진학해 미용사가 되는 것. “사람의 헤어스타일은 그 사람의 첫 인상을 결정하잖아요. 제가 손질해 준 걸 보고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라며 여주양은 해맑게 웃었다.
앞날이 창창한 여주양의 인생에서 방향을 틀어준 역할을 한 ‘멘토 아빠’ 노오섭씨는 방황하는 아이들을 바로잡는 비결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 잠시 삐뚤어진 아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듣고 이해한 뒤 얘기를 해 주면 아이들도 이해하고 따른다”며 그는 미소지었다.
군포=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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