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경보기·스프링클러 등에 설치
비밀번호 알아낸 후 빈집털이
경찰 로고 새겨진 덮개 제작 배포
설연휴 택배 가장한 강도 주의보도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를 지켜드립니다.”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경찰서에 책받침 재질로 만든 현관문 도어록(전자식 잠금장치) 보안 덮개 1,000여장이 배달됐다. A4용지 3분의2 크기인 보안 덮개는 접거나 조립해 도어록에 부착하면 주변 시선에 노출되지 않은 채 비밀번호를 누를 수 있는 제품. 일선 경찰서가 경찰 업무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물건을 잔뜩 사들인 이유는 뭘까?
요즘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이연지(36ㆍ여)씨는 집 현관문 도어록을 열 때마다 우유통이나 복도에 세워진 자전거를 유심히 살펴 본다. 이씨는 4일 “명절 연휴나 휴가 등 오랜 기간 집을 비우게 될 때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더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일원동에 사는 김모(32)씨는 “이웃주민보다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 될 경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린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머쓱함과 민망함은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근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를 훔쳐 본 뒤 빈 집을 터는 절도가 급격히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만큼 아파트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심지어 아파트 복도 천장에 설치된 화재경보기 등 기존 구조물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더욱 감쪽같아진 범행 수법까지 등장해 주민들의 우려를 가중시켰다. 실제 지난해 8월에는 절도범들이 서울 송파ㆍ노원구, 경기 성남ㆍ고양시 등 수도권 일대 아파트 복도 스프링클러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집을 털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도어록 비밀번호 유출 방지 대책에 골몰하던 경찰은 결국 고민 끝에 자체 예산으로 경찰 로고가 새겨진 보안덮개를 제작해 주민들에게 무료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강남서 관계자는 “당초 설 연휴 전에 보안덮개를 배포할 계획이었지만 부녀회 설문조사 등을 거쳐 절도 위험이 큰 지역을 점검한 뒤 나눠주기로 방침을 바꿨다”며 “빠르면 내달부터 덮개가 배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외에도 가정집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얼마 전에는 설 명절을 맞아 택배를 가장한 강도나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예방책도 내놨다. 경찰청은 주문한 택배 배송 시간과 배송담당자의 연락처를 꼼꼼하게 챙기고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도착할 경우 문을 열기 전 택배 발송자를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명절 연휴 기간 택배 기사를 가장한 강ㆍ절도범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택배가 반송됐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오더라도 일단 보이스피싱과 문자메시지사기(스미싱)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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