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대학원까지 나온 30대
"결혼해 아이 생겼는데 취직 못해
돈 궁하고 짜증나 일 저질렀다"
불황 등 우울한 사회분위기 맞물려
비슷한 처지 고학력 미취업자 자극
反사회 모방범죄 확산 경계해야
인천국제공항 화장실에 폭발물 의심 물체를 설치하고 아랍어 협박 메모까지 남긴 용의자가 사회에 불만을 가진 30대 고학력 미취업 남성으로 밝혀졌다.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 우려는 덜었지만, 취업난 경기불황 등 어려운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소위 ‘외로운 늑대형’ 반(反)사회 범죄 확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범행 닷새 만에 30대 용의자 검거
인천국제공항경찰대는 지난달 29일 인천공항 1층 남자화장실에 부탄가스 등을 붙인 폭발물 의심 물체와 협박성 메모를 남긴 유모(36)씨를 폭발성 물건 파열 예비음모와 특수협박 혐의로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자 공항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84대를 분석, 신고 접수 시간을 전후해 화장실을 이용한 762명을 추려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범행 당일 오후 3시 36분쯤 쇼핑백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빈 가방으로 나온 뒤 2분 만에 공항을 빠져 나가 서울로 간 유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통해 유씨 동선을 파악한 뒤 3일 오후 11시 30분쯤 서울 구로구 자택에서 검거했다.
유씨는 범행 당시 현장에 아랍어로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알라가 알라를 처벌한다”는 글자가 적힌 메모지를 남겨 테러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아랍어 메모지는 유씨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번역, 인쇄한 것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테러 단체 등과의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 불만 범죄 확산 막을 대책 필요
사건은 테러 대신 가짜 폭발물 소동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검거된 용의자가 취업난 등으로 사회에 불만을 품고 불특정 다수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은 심각한 대목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음악을 전공한 유씨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결혼해 아이까지 생겼지만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 2003년부터 조울증 치료를 받았으나 돈이 없어 1년 전부터 약을 끊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취업이 안 돼 돈도 궁하고 짜증이 나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취업문제 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과 개인 병력인 조울증이 복합된 것으로 보고 다른 범행 동기 등도 계속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 상 유사한 범죄가 늘어날 개연성이 있다고 얘기한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씨 같은 고학력 미취업자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이 사회 불만을 풀 심리 탈출구와 자기존재감 확인 수단으로 사회 불만형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외국처럼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외로운 늑대형’ 범죄가 확산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숨지게 하고 자살한 최모(사망 당시 23세)씨도 사회적 불만을 가진 은둔형 외톨이였다. 유씨의 경우도 “시설물을 폭발 시킬 의도는 없었으나 범행 장소를 인천공항으로 정한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지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우울한 사회 상황과 맞물려 ‘외로운 늑대형’ 범죄가 추가로 발생할 경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모방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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