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2월 5일
1920년대 말~ 30년대 초는 유성영화(talky movie)가 빠르게 확산되는 시기였다. 몸짓과 표정으로 연기하던 배우들은 ‘목소리’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느라 힘들었을 테지만, 관객들은 보다 진짜 같아진 영화에 한껏 매료됐다.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라고도 하고 최초의 유성영화라고도 하는) ‘모던 타임즈’가 1936년 2월 5일 개봉됐다.
무성영화라 보는 근거는 작품에 단 한 마디 대사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꼭 대사가 필요한 대목에서도 채플린은 자막을 썼다. 유성영화라 보는 까닭은, 스피커 등을 통해 등장 인물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무엇보다 채플린의 육성이 처음 등장해서다. 영화 결말부, 식당 무대에 등장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 하지만 그는, 어쩌면 목소리를 내는 게 싫어, 가사를 적은 쪽지를 잃어버린다. 아무렇게나 하라는 여주인공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코믹하게 편곡된 폭스트로트풍 불어 노래(Je cherche apres Titine)를 부른다. 물론 가사는 원곡과 다른, 즉흥적으로 지어 부른 거였다. 그는 그 ‘가짜’로 영화 속 청중들을 웃겼고, 영화 바깥의 관객도 웃겼다. 혹자는 거기서 소리 연기에 대한 채플린의 풍자를 읽기도 한다. 채플린이 영화에 말(목소리)를 담는 걸 내켜 하지 않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전작 ‘시티 라이트’를 찍고 난 뒤 배우들이 유성 영화에 익숙해져 몸짓 연기를 잊어버리고 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인으로서 보수적이었다.
물론 그는 사회주의자였거나 좌익에 가까운 영화인이었다. 훗날 그는 비미활동위원회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 뒤 영주권을 포기해야 했다. ‘모던 타임즈’ 이전의 ‘키드’나 ‘황금광시대’ ‘시티라이트’ ‘순례자’ ‘파리의 여인’ 등에서 그는 자본과 가난, 신분과 계급, 종교 권력의 맹목성 등을 비판하는 사회성 짙은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다. ‘모던 타임즈’를 만들던 무렵은 1차대전 특수와 전후 유럽의 재건 수요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제가 1929년 대공황으로 참담하게 주저앉은 때였다. 영화에서 그는 가난한 삶의 고달픔과 달라져버린 노동과 삶의 조건들에 대한 불편ㆍ불안을 집요하게 부각시켰다.
영화들의 메시지에 가려 쉽게 감지되진 않지만, 변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 재단하고 강요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반발감이 그의 영화에는 스며있다. 그 시절 다수처럼 그의 사회주의는 독자적인 이념이 아니라 반자본주의, 즉 초기 산업자본주의가 내팽개친 인권과 정의 등 보편 윤리의 다른 이름에 가까웠다. 그의 비판은 체제가 아닌 현실 비판이었고, 그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였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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