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6.5]국민재테크 잔혹사

입력
2016.02.04 20:00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은 다소 뜸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증권맨들과의 대화엔 이런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어디 좋은 종목 좀 없어요?” 곧 터질, 남들은 모르는 ‘고급 정보’에 어떻게든 한 숟가락 얹어보려는 ‘개미’의 본능이었다. 그럴싸한 시나리오라도 주워듣는 날, 이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종종 대박을 꿈꾸며 주머니를 털어보지만 대개는 쪽박. 그래도 간혹 재미를 볼 때도 있었기에 그런 은밀한 문답은 되풀이됐더랬다.

새해 들어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녹인(knock-inㆍ손실가능범위 진입) 사태로 속을 끓이는 투자자들은 각자 금융사 창구에서 위와 같은 ‘주거니 받거니’를 한번씩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둘러봐도 돈 맡길 데가 마땅치 않은데 어디 좋은 상품 없을까요?”(고객) “사실 맞춤한 상품이 하나 있습니다. 요즘은 다들 이 상품만 찾으세요.”(직원) 정도가 아니었을까.

ELS의 ‘중위험ㆍ중수익’이란 광고문구는 초저금리 시대에 묘한 중독성을 더했다. ‘뭔가 걸지 않으면 얻을 것도 없다’는 전문가들의 추천에 용기도 얻었다. 한집 건너 누구는 가입 6개월 만에 10% 약정수익을 챙겼다는 식의 입소문이 퍼지자 투자자들은 쏠렸다.

앞서 재작년부터 현대차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ELS 투자에 경고등을 울렸고, 그 여파로 종목형 ELS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더 좋은 ELS’를 찾아 몰려다녔다. 작년 4월 1만4,000대 최고점을 넘어 “곧 2만을 간다”는 낙관론까지 퍼지자 홍콩H지수 ELS는 “수익률도 높고 망할 일도 없다”는 입소문을 타고 전체 ELS 발행잔액의 60%를 빨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돼 홍콩H지수가 반토막 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뒤늦게 금융사 직원을 탓해봐야, 가벼웠던 자신의 귀를 자책해 봐야 소용이 없다. 뒤늦은 금융당국의 위로(?)처럼, 부디 2018년 이후 만기 때는 지수가 다시 오르길 기대하는 수밖에.

돌이켜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불었던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도, 2007년 국내 증권사에 대기번호표까지 유행시켰던 인사이트 펀드도, 2012년 자산가들 사이에 필수 투자아이템으로 각광받았던 브라질채권 투자도 모두 ELS와 같은 일종의 ‘국민 재테크’ 상품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겐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2000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6개월 만에 20조원이 빠져나갔고(바이코리아 펀드), 2008년 수익률이 -60%까지 곤두박질쳤는가 하면(인사이트 펀드), 헤알화 가치가 반토막 나면서 환차손으로만 투자금의 절반을 날리고 있는(브라질 채권) ‘잔혹사’의 주인공들이다.

비극은 왜 반복되는 걸까. 우선 금융사들의 실적 지상주의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판매한 상품의 수익이 떨어지건, 오르건 금융사는 개의치 않는다. 수수료를 주수입원으로 삼는 금융사에게 고객의 안전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여전히 투자자들 사이에 만연한 한탕주의 심리도 비극을 부추긴다. 남들 따라 하다간, 욕심에 사로잡히면 망한다고 수없이 들었어도 대개는 솔깃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워런 버핏 같은 투자의 대가들은 진작부터 될 성 부른 떡잎부터 고를 것(공부하라)을, 오래 묻어둘 것(참으라)을, 복리효과나 저렴한 수수료 같은 작지만 중요한 요소를 챙길 것(기본에 충실하라)을 강조해 왔다. 이들이 숱한 활황과 불황에서도 지금껏 살아남은 비법이기도 하다.

‘재테크 빙하기’로까지 불리는 투자의 불확실성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수익에 목말라 있는 한, 제2, 제3의 국민재테크는 앞으로도 탄생할 것이다. 다만 또 다시 잔혹사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한가지는 기억하자. 남들 따라 하는 건 절대 안전이나 수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 주식도 남들이 팔 때 사고, 살 때 팔아야 돈이 되지 않던가.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